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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소수자 배려하는 이중국적 정책을 / 이철우

등록 2009-04-01 20:57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기고
지난 3월26일 개최된 제11차 국가경쟁력강화회의에서 법무부는 부분적으로 이중국적을 용인하는 내용의 국적제도 개선 방안을 보고했다. 그 내용은 매우 실망스럽다. 정부의 구상 중 하나는 국익에 도움이 되는 ‘우수 외국 인재’가 귀화할 때 5년의 거주기간 요건을 면제하고 원국적의 포기를 요구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우선 외국인을 ‘우수’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누는 것도 우스울 뿐만 아니라, 그런 식으로 국가경쟁력이 강화될지 의심스럽다. 당장 국가대표팀에 발탁되고자 하는 체육인과 한국계 외국인 외에는, 이중국적을 허용한다는 이유로 한국에 올 ‘우수’ 인재는 별로 없다. 종종 거론되는 거스 히딩크 전 축구대표팀 감독 같은 인재는 한국 국적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오히려 거추장스럽게 생각할 것이다. 그보다 ‘덜 우수한’ 외국인에 대해서는 기준이 문제가 된다. 학자의 경우 논문 편수를 기준으로 삼을 것이라는 보도도 있다. 그렇게 되면 한국의 외국인 정책은 국가경쟁력에 이바지하기는커녕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정부의 안경에는 이중국적 허용을 진정 필요로 하는 사회적 소수자들이 비치지 않는다. 유년기에 국외로 송출된 입양인 중 귀국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이들은 국민으로 돌아오고 싶지만 길러 준 나라의 국적 또한 버릴 수 없는 처지에 있다. 화교들은 차별에도 불구하고 귀화를 주저한다. 어려운 시절 소속감을 준, 그리고 지금은 외교적으로 고립된 대만과 형식적 유대를 끊는 것에 대한 마음의 부담 때문이다. 한국에 시집와서 귀화했다가 합당한 이유로 모국에 귀환하려는 결혼이주 여성 중에는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 나라에서는 국적회복 제도가 제대로 가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인도적 고려가 필요한 사람들을 배려하는 이중국적 용인의 필요성을 지적해 왔다. 유럽에서는 “원국적 포기를 요구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을 경우” 이중국적을 허용하는 것이 규범으로 되고 있다.

정부의 구상 중 두 번째는 출생 등 선천적 또는 비자발적 이유로 이중국적자가 된 사람에게 국적을 선택하라고 통지하는 최고(催告) 절차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이중국적자가 정해진 기간 안에 국적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아무 통지 없이 한국 국적을 자동적으로 상실시키는 현행법의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것이다. 선천적 이중국적자에는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만이 아니라 국내에서 출생한 다문화가정 자녀도 있다. 지금 제도하에서는 불가피하게 생겨나는 많은 이중국적자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한국 국적을 상실할 수 있다. 그러나 이중국적자, 특히 국외거주자는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최고는 철저히 집행되지 못하며, 누구에게는 최고하고 누구에게는 하지 않는다면 형평성 시비가 발생한다. 일본과 독일은 국적 선택의 최고를 받은 자가 선택을 하지 않더라도 국적상실을 선고하지 않거나 상실에 따른 행정조처를 하지 않음으로써 이중국적 상태를 용인한다. 혹시 정부가 최고 또는 국적상실의 효과 집행을 신축성 있게 해서 이중국적을 용인할 의도를 가지고 있다면, 그보다는 더 투명한 제도를 도입하면서 국민을 설득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 말해 주고 싶다.

정부는 국민의 공감대가 충분하지 않으므로 이 범위에서만 국적법을 개정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중국적의 허용이 상류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소수자 배려와 이민의 사회 통합을 위해서도 긍정적인 의미를 가진다는 점을 이해할 때 국민은 비로소 공감할 것이다.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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