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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피디수첩 수사, 불가능한 과제 / 김갑배

등록 2009-04-02 23:02

김갑배  변호사
김갑배 변호사
기고
피디수첩 수사가 재개됐다. 검찰은 최근 제작진을 소환하고 자택을 압수수색하며 피디 1명을 체포하여 이틀간 조사하고 풀어주기도 하였다.

헌법에서는 국가기관에 대한 비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국가기관에 대한 명예훼손이 성립하지 않는 이유다. 만약 국가기관에 대한 명예훼손이 허용된다면 국가정책에 대한 비판이 봉쇄되고 결국은 국민주권주의의 원리에 어긋나게 된다. 이를 의식한 듯 현 정권은 “피디수첩의 보도 내용이 국가기관 ‘구성원’을 비판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이런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언론의 공적인 비판 기능은 매우 심각하게 위축된다. 검찰은 전제부터 잘못된 수사에 앞장서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굳이 수사를 하겠다면, 적어도 공정한 절차를 따라야 한다.

대법원 판례에서는 명예훼손 여부 확인을 ①보도에 명예훼손 내용이 포함된 경우 ②객관적 사실을 조사하여 ③보도가 허위임이 판명되면 ④공익성과 상당성이 있는지를 검토하여 이것이 없을 경우 ⑤비방의 목적이 있었는지를 조사하는 것이 순서다. 이때 검사는 그 보도가 허위 사실이며 비방의 목적이 있었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여기서 피해자의 행위라는 구체적인 사실의 적시가 있고, 그것이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이어야 한다. 또 사실의 적시는 입증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보도가 의견 또는 평가일 경우 그 내용이 무엇이건 표현의 자유로 보호받음은 물론이다.

피디수첩 보도의 내용은 이미 알려져 있는 것처럼 ‘한 흑인 여성의 사망 원인이 인간광우병 의심이 든다. 이러한 질병은 광우병과 관련이 있다. 미국에서 주저앉는 소는 광우병의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다. 보도는 흑인 여성의 증상을 토대로 그 질병의 의심이 든다고 말하면서 미 보건당국이 그 원인을 조사중에 있다는 것이므로 증상을 토대로 한 질병의 원인에 대한 의견 표명 수준이다. 이는 의사가 하는 질병 원인에 대한 최종 판정 전의 진단과도 같은 맥락이다.

또 통상적으로 주저앉는 소가 광우병의 위험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에 미국 소비자단체는 전수검사를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미 일본과 유럽에서는 전수조사를 하고 있고, 오바마 대통령은 주저앉는 소의 도축을 금지시켰다. 미국에 있는 주저앉는 소가 광우병과 관련이 없다고 증명하는 것은 현재 과학 수준으로는 불가능한 과제이다. 따라서 광우병과 관련된 피디수첩의 보도는 입증이 불가능한 사안에 대한 의견 표명에 해당한다.

나아가 피디수첩 보도 내용에는 어떤 명예훼손 내용도 포함하고 있지 않다. 협상단 소속 개개인의 비리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전체적으로 협상이라는 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공무원이 정책 수행을 잘못하면 이에 대해 언론이 비판하는 것은 민주국가에서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인 만큼, 이러한 수준의 정책 비판은 의견 표명으로 보호돼야 한다.

만약 검찰이 보도된 내용이 ‘허위 사실’이라고 주장하려면 먼저, 미국에서 주저앉는 소에 대해 조사하여 전혀 광우병의 위험성이 없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검찰은 이 점에 대하여 수사할 계획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인다. 현실적으로나 과학적으로 입증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객관적 사실을 조사하지도 않은 채, 검찰이 제작진을 상대로 무엇을 조사하겠다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이렇게 피디수첩 수사 앞에는 법리적으로 넘을 수 없는 장벽이 놓여 있다. 검찰이 장기간 집요하게 수사하는 것은 수사권 남용이며, 언론 자유를 억압하는 일이 될 뿐이다. 검찰은 이제라도 수사를 종결해야 국민적 신뢰를 그나마 덜 잃게 될 것이다.


김갑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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