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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짐승이름] 꺼벙이 / 정호완

등록 2009-04-15 21:40

짐승이름
“아내가 분유를 타 보란다. 어리둥절한 일이긴 하였으나 누구의 부탁인데 아니라 할 수 있을까. 엉거주춤 분유통을 몇 개 겹쳐 놓고 위에 앉아서 이랴! 이랴! 난데없는 걸레가 날아든다. … 가수들은 노래를 부를 때 청중들이 손수건을 던지며 환호하면 행복해한다는데. 아내의 사랑에 눈시울이 젖어온다.”(‘어느 꺼벙이 남편의 일기’에서)

아이를 기르는 데서 남편과 아내의 구별이 있으랴. 아내가 바쁘면 남편이 아이를 돌보아야 함은 당연하다. 그래, 아내가 아이 줄 분유를 타보라 하여 어느 남편이 분유통을 깔고 앉겠는가. 꺼벙이의 본딧말은 ‘꺼병이’다.

꺼병은 꿩의 어린 새끼다. 일부에서는 꿩을 꺼엉이라 하는데, ‘꺼’에 병아리의 ‘병’을 합하여 꺼병이-꺼벙이라 했을 가능성이 높다. 꿩이 어릴 적엔 암수가 분명하지 않을 정도로 생김새가 우중충하고 못생겼음을 빗대어 외모나 활동이 어정쩡한 이를 ‘꺼벙이’라고 이른다. 가람 이병기 선생은 당호를 수우재(守愚齋)라 했다. 어리석음을 지키라는 뜻이다. ‘어리석음’의 본질은 ‘어리다’에 있다. 사리분별을 잘 못하니 어린 것이고, 뒤로 오면서 나이가 적다는 뜻으로 쓰인다. 그 본질은 ‘어리다’에 있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 하였거니 조금은 어리석게 꺼벙하게 살면서 서로에게 정을 주고받을 수 있는 세상이라면 좋지 않겠는가.

정호완/대구대 명예교수·국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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