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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연속기고] 세 순례자의 혁명 / 김인국

등록 2009-04-17 21:56

김인국 신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총무
김인국 신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총무
[연속기고] 종교인 오체투지 순례를 보며
주말 아침이다. 평일과 사뭇 다른 고요를 누리고 있다면 가만히 물어보자. 산다는 게 도대체 무엇인가? 그저 먹고 마시며 흥청거리는 게 삶의 보람은 아닐 것이다. 간디는 하느님을 ‘찬양’하는 것, 바꾸어 말하면 인류에게 성실하게 ‘봉사’하는 것을 값진 삶으로 여겼다. 사람에게는 조심조심 모셔야 할 위가 있고, 고이고이 아껴주어야 할 아래가 있다는 것이 동서 종교와 도덕의 오래된 생각이다.

다석 유영모 선생이 아끼셨던 기도문이 하나 있다. “하느님, 저를 사랑으로 내시고 저에게 영혼과 육신을 주시어 다만 주를 위하고 사람을 도우라 명하셨나이다. 제가 비록 죄가 많사오나 주께 받은 몸과 마음을 오롯이 도로 바쳐 찬미와 봉사의 제물로 드리오니 어여삐 여기시어 받아주옵소서.” 짧은 기도라도 사람이 누구인지, 생명의 본분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바칠 때마다 정신이 맑아지고 기운이 샘솟는다. 그런데 저뿐 아니라 남을 위해서도 살아야 한다는 이 갸륵한 생각은 어디서 비롯했을까? 사람은 어째서 자기를 만족시킬 때보다 남의 배고픔이나 목마름을 채워줄 때 훨씬 더 기뻐하는가? 사람끼리 힘세고 잘났다고 맘대로 패고 멋대로 부려먹는 일을 엄하게 나무라고 ‘금수만도 못한 짓’이라고 가르칠까? 신비로운 일이다.

신비? 요즘 같아서는 인의예지가 사람의 덕목이라는 게 정말 수수께끼 같은 일이다. 세상에 대한 비관을 넘어 아예 인간성 그 자체에 대한 경멸이 최악의 지경에 이르렀다. 어째서 생각 있는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고 눈을 가리며, 갈취의 폭력과 추방의 악행을 함부로 저지르는가? 죽이면서도 살리는 길이라고 우겨대는 저 뻔뻔스러움은 어디서 나왔는가? 신음조차 내지 못하는 목숨부터 차례대로 죽어 가는데, 질러대는 소리는 모처럼 경세제민의 바른 길이 닦였다는 욕망 어린 찬가뿐이다. 국가권력이 저지르는 갖가지 악업에 살아 있는 영혼들은 매일같이 상처를 입는다. 검은 기름이 덮쳤던 서해보다 더욱 무서운 정신의 오염까지 겹쳐 우리는 아예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다. 하여 산도 타 죽고 사람도 타 죽는다.

이 땅에 부처님 모시고 예수님 섬기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라고 한다. 얼마 전 예수님 부활하셨고 보름 후 부처님 나신다지만 믿는 일과 사는 일은 별개라서 그런지 세상은 흐르던 대로 흐른다. 경천애인의 본분을 격려해야 할 종교지만 천국과 정토는 이 땅과 상관없는 일인지, 그 누구도 자멸을 향하는 오늘의 곤두박질을 나무라거나 염려하지 않는다. 부끄럽고 안타깝다.

오체투지 순례는 내일 4·19혁명 기념일에도 계속된다. 순례자들은 묻고 또 묻는다.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산다는 게 무엇인가? 구경꾼들은 꼿꼿이 일어섰다 산산이 부서지듯 엎어지는 이 희한한 행렬이 궁금하다. 당신들 지금 뭐 하는 거요? 매 순간 뼈를 깎듯 분투하는 순례자들의 깊은 심중을 어찌 헤아릴까마는 아마 싸우고 있을 것이다. 누구를 거슬러? 조만간 물러갈 권력 따위에 맞서는 그런 치사한 다툼이 아니다. 괴물이 되어버린 인간 자신과의 싸움이다. 자기를 이겨낸 힘이 아니라면 불의는 반드시 되돌아와 우리를 괴롭힌다. 49년 전 권력을 이겨서 불의를 몰아냈다면 지금은 인간을 이겨서 불의를 쫓아낼 때다. 무례와 무도의 시절, 오체투지의 순례자들이 사람의 길을 닦는 참혁명을 위해 진땀을 흘리고 있다.

김인국 신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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