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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연속기고] 영화관에 휴대전화도 못 들고 가나? / 남희섭

등록 2009-04-20 20:50

남희섭  변리사, 정보공유연대 대표
남희섭 변리사, 정보공유연대 대표
[연속기고] 다시보는 한-미 FTA ⑤
요즘 지적재산권(지재권)과 관련하여 국제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은 ‘액타’(ACTA: Anti-Counterfeiting Trade Agreement)란 거다. 우리말로 ‘위조품 방지 무역협정’ 정도로 옮길 수 있는, 무슨 음료수 이름 같은 이 조약을 ‘짝퉁’ 막자는 국제협력쯤으로 이해하면 큰 오산이다. ‘액타’는 상표 위조품만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특허·저작권 등 지적재산권 침해가 의심되는 상품 전부를 포함한다. 일본과 미국이 제안한 액타는 2007년부터 논의가 시작돼 유럽연합과 한국 등도 참여하고 있다. 그간 내용을 공개하지 않아 밀실협상, 비밀회담 등 온갖 비난을 받았다. 무슨 내용을 협상하는지 알려 달라고 정보공개 청구를 하면 국익을 현저하게 해친다는 이유로 번번이 거절했다. 필자가 한국 정부에 요청했을 때도 그랬고, 미국과 유럽의 시민단체들도 같은 경험을 했다. 그러다 얼마 전에 오바마 행정부가 내용의 일부를 공개했다. 분명 처음 공개한 것인데, 낯이 많이 익다. 어디서 봤을까? 바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타결되고 미국 무역대표부가 이걸 앞으로 모델로 삼겠다더니 정말 그대로 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미국에 일방적으로 양보한 협상이 결국 국제적인 민폐를 끼치는 셈이다. 액타가 모델로 삼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지재권 집행 조항이다. 민사소송, 형사소송, 관세청의 통관 절차에서 지재권 보호를 강화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지재권 침해를 줄이자는데 누가 반대할까? 문제는 위법행위를 막자고 절차의 공정성을 잃고 다른 가치들을 지나치게 훼손한다는 데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지재권 침해 행위를 내란죄나 흉악범보다 더 중한 죄로 취급한다. 가령 칼로 누굴 죽이면 이 칼은 살인죄의 증거물로 경찰에서 가져간다. 그런데 이 칼이 범죄인의 소유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소유라면 몰수까지 할 수는 없다. 그런데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저작권 침해에 사용한 물건을 유달리 취급한다. 누가 소유한 것인지 묻지 않고 다 몰수한다. 저작권을 침해하는 데 사용되었다는 이유로 그 도구를 다 몰수한다면, 가령 학생이 학교 컴퓨터로 음악 파일을 내려받으면 그 학교 컴퓨터를 몰수해야 한다. 돈을 갚지 않기 위해 차를 타고 도망갔다고 그 차를 몰수해 폐차시킨다면 돈을 빌려준 사람의 권리를 보호하려는 목적치고는 너무 심하지 않은가?

더 심한 것도 있다. 이른바 ‘캠코더 조항’이란 것인데, 극장에서 녹화장치를 사용하려고 시도만 해도 형사처벌을 받는다. 녹화장치는 캠코더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요즘 누구나 갖고 다니는 카메라 달린 휴대전화도 포함된다. 극장에서 휴대전화로 영화를 찍었다고 해서 다 저작권 침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영화 몇 장면 나중에 보려고 찍는 행위는 저작권 침해가 아니란 말이다. 상당량을 촬영한 다음 인터넷을 통해 전송하는 행위를 해야 비로소 저작권 침해다. 결국 캠코더 조항은 범죄행위 실행의 착수에도 미치지 않은 행위, 즉 예비 행위를 처벌하는 것이다. 예비 행위에 대한 처벌은 내란죄나 살인죄, 강도죄와 같은 특별히 중한 죄가 아니면 인정하지 않는다. 액타를 처음 제안한 일본조차 미국 제안에 반대하며 영화를 복제하고 전송한 경우에만 처벌하자고 주장한다. 한국 정부는 한마디도 못한다. 고도로 균형을 맞추어 놓은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이라 글자 한 자라도 고치면 균형이 와르르 무너지기 때문이라고 변명할 것이지만, 속내는 다른 데 있다. 죄다 퍼준 협상이란 게 들통날까 봐서다. <끝>

남희섭 변리사, 정보공유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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