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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연속기고] 눈부신 것의 승화를 위한 매질 / 청화

등록 2009-04-24 22:23

청화/스님, 전 조계종 교육원장
청화/스님, 전 조계종 교육원장
[연속기고] 종교인 오체투지 순례를 보며
길 쪽으로 가지를 뻗은 목련나무가 하얀 꽃을 피웠을 때는 지나가던 사람도 잠시 그 아래 걸음을 멈추고 경건히 우러러보며 상념에 젖곤 했다. 소리 내어 부르지도 않고, 손짓도 안 했지만, 사람들은 그 순백의 꽃을 보는 순간, 환희하여 스스로 일상으로부터 뭔가 활짝 깨어남을 체험했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꽃이 길에 떨어진 날에는 한낱 오물처럼 차에 치이고, 행인들의 발길에 처참히 밟혔다. 사람들은 야속하게도 땅에 떨어진 것은 꽃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을 보며 꽃을 모독하는 것 같아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올해 4월은 4·19 혁명 49돌이 되는 달이다. 독재와 부정과 부패가 암울한 계절을 만들고 있던 49년 전의 그 4월 혁명은 꽃핀 목련나무만큼이나 눈부셨다. 그리고 그때는 그 눈부심이 우리의 정신 깊숙이 자리를 잡아, 다시 이 땅에 독재와 불의와 힘의 횡포가 발붙이지 못하게 하는 국민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어느 사이 우리는 4·19의 혁명을 땅에 떨어진 꽃잎쯤으로 짓밟고 깔아뭉개고 하다가 아예 잊어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 그 결과가 비민주적인 정권들이 탄생하여 다시 독재와 부정부패의 옛 악령들이 횡행하는 세월을 맞게 하지 않았던가.

그로부터 비가 왔다. 옷도 젖고 자유도 젖고 인권도 젖게 하는 궂은비가 하염없이 왔었다. 그때 다시 일어나 시작한 싸움은 또 얼마나 길고 지루했던가. 비를 가진 사람이 가면, 또 비를 가진 사람이 등장하고, 참으로 긴 장마였다. 그러나 마침내 쨍하는 날이 왔다. 6·10 항쟁의 승리가 바로 그날이다. 드디어 민주주의의 깃대에 깃발을 올리는 날이었다. 그 또한 꽃핀 목련나무만큼이나 눈부셨다. 따라서 그때도 그 눈부심을 우리 사회에 길이길이 간직하여 앞으로 반민주적인 색채를 일체 용납지 않는 국민이 되리라 믿었다. 그러나 또 아니었다. 6·10 항쟁의 정신도 땅에 떨어진 꽃잎처럼 발로 밟고 짓이기다가 무슨 오물같이 취급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다 아는 바와 같이 지난 대선 때 국민들은 정권교체를 감행했다. 그것도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곧 한나라당이라는 배에다 이명박을 선장으로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금방 후회했다. 선장이 배를 운전하는 솜씨나 배를 끌고 가는 방향이나 속도 조절이 맘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많은 사람들은 실의에 빠져 있다. 정부를 향하여, 사회를 향하여, 불평과 원망을 내뿜으며 절망의 언저리로 모여들고 있는 것이다. 결국 눈부신 것을 우리의 삶 속에 고귀하게 승화시키지 못한 과보이다.

이런 때에 스님과 신부님이 함께 결행하는 오체투지는 무엇인가. 그분들은 사람과 생명과 평화의 길을 찾는 기도순례라고 했지만 사실은 그보다 훨씬 절박하고 강하게 느껴지는 무엇이 있다. 그것은, 그것은 더 이상 참을 수도 없고 묵과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세상을 향해 후려치는 매질인 것 같다. 그렇다. 오체투지는 지금 마땅히 생각해야 할 것을 생각할 줄 모르는 돌이 된 머리, 마땅히 들어야 할 말을 들을 줄 모르는 돌이 된 귀, 마땅히 봐야 할 것을 볼 줄 모르는 돌이 된 눈, 그런 사람들을 깨어나라고 내려치는 매질인 것이다. 그리고 그 눈부신 것을 미래까지 가지고 갈 줄 모르고 낙화처럼 밟아버린 사람들도 이제는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달으라고 함께 때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 사회에 위기와 절망을 자초한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이 매를 아프게 맞아야 한다. 그래야 앞이 보이지 않는 지금의 현실 속에서 꽃핀 목련나무 같은 눈부신 것을 이뤄내는 사람으로 다시 깨어날 것이다. <끝>

청화/스님, 전 조계종 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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