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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일류기업 삼류로 만드는 정권 / 정남기

등록 2009-04-27 21:12수정 2009-04-28 00:02

정남기  논설위원
정남기 논설위원
아침햇발
국세청에서 고위 공직자가 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 힘들다. 본청 과장을 거쳐야 하고 거기서 몇 년을 고생해야 기회가 열린다. 하지만 본청 과장이 되는 것 자체가 어렵고 그 뒤에도 승진에 대한 보장이 없다. 직원 2만명에 고위 공직자가 50명 안팎이니 까마득히 먼 길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어려운 일도 아니다. 권력 실세와 가깝거나 청와대만 갔다 오면 한두 단계를 쉽게 건너뛸 수 있다. 인사철만 되면 청탁이 쏟아지고 투서와 제보가 판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선 줄서기가 특히 심해졌다. 승진 서열에서 한참 밀리는 지방청 과장이 1년 만에 국장으로 올라서는가 하면 지방청 국장이 세 차례나 보직을 바꾸면서 차장급 지방청장으로 승진한 경우도 있다. 사실상 두 단계를 뛰어오른 꼴이다. 티케이(대구·경북)라는 출신 성분과 청와대 파견 근무라는 배경이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것이다.

정부가 매일같이 공직자들의 기강 확립과 공기업 개혁을 외치고 있지만 정작 공직사회의 물을 흐리는 주범은 청와대다. 스스로 원칙과 관행을 무시하고 출신 지역과 인맥으로 움직이니 공직사회가 온전할 리 없다. 배경 없는 공무원들은 정권과 코드라도 맞춰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돈줄이었던 태광실업에 대한 세무조사로 1년 동안 자리 유지에 성공했던 한상률 전 국세청장처럼.

공기업들은 어떤가. 직원들은 차라리 낙하산이 낫다고 말한다. “경영진이 언제 바뀔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서 정상 업무가 가능하겠느냐”는 얘기다. 실제로 한국거래소(KRX)는 정부와의 갈등으로 한 해가 넘도록 경영 불안이 지속되고 있다. 정부는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인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이사장 선임을 거부한 것 때문에 지난 1년 동안 이정환 이사장의 사퇴를 압박해왔으며, 여의치 않자 지난 1월 거래소를 공공기관에 편입시키는 방법까지 동원했다. 사람 한 명, 자리 하나 때문에 조직을 쥐어흔드는 치졸한 모습이다.

공직자들에 대한 인사는 법적·제도적 근거라도 있다. 민간 기업의 경영진 선임까지 개입하는 대목에선 할 말이 없어진다. 올해 초 이구택 전 포스코 회장을 물러나게 하고 후임자를 뽑는 과정에서 권력 실세들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아무 직책도 없었던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과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이 정준양 현 회장 선임에 보이지 않는 압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으니 새로울 것도 없다. 회장 교체설, 검찰 수사 착수, 회장 사임, 수사 종결, 후임자 낙점의 과정이 권력자의 의중을 반영한, 뻔한 물갈이 수순이라는 것을.

문제는 나라 밖의 시선이다. 선진국으로 불리는 한국에서, 그것도 세계적인 기업인 포스코의 회장을 검찰 수사로 흔들고 갈아치우는 것을 지켜보는 외국인들의 반응은 어떨까? 아마도 ‘한국은 아직 멀었어’라는 냉소만 남게 될 것이다.

그뿐인가. 정부는 또 케이티를 압박해 이석채 전 정보통신부 장관을 새 회장으로 들어앉혔다. 장관 시절 개인휴대통신(PCS) 사업자 선정 비리로 물의를 빚었던 그는 취임하자마자 가장 먼저 정치권 인사들과 자질 문제로 낙마한 공직자들을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그러면서 케이티 개혁을 외치고 있다. 과연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포스코와 케이티는 자기 분야에서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기업들이다. 이명박 정권이 공무원과 공기업 인사를 뒤흔드는 것으로 모자라 민간 기업까지 손을 대서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측근 몇 사람의 자리 마련이 세계시장에서 뛰는 일류 기업들을 삼류로 떨어뜨리는 것보다 더 가치 있다는 얘긴가?

정남기 논설위원 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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