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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공교육의 희망이 고작 학원인가? / 김명신

등록 2009-04-27 21:14

김명신  함께하는 교육시민모임 공동회장
김명신 함께하는 교육시민모임 공동회장
기고
곽승준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은 한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학원 영업을 밤 열시까지로 제한하는 것을 목표로 ‘사교육과의 전쟁’에 목숨을 걸겠다고 했다. 일단 환영한다. 학원 영업시간 제한은 일찍이 교육운동단체들이 학생들의 건강과 인권을 지키고자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의제이다. 그러나 지난 수년간 서울시교육청 공정택 교육감과 한나라당 시의원들이 ‘학원 24시간 무제한 영업론’을 주장하며 조례 개정을 시도해왔고 교육운동 진영은 이를 막아내느라 고전해왔다. 이번 조처의 성공을 기대하는 동시에 사교육 종사자가 이미 40만명을 넘었다고 하고 대졸자들 가운데 학원 강사직으로 진출한 비율이 10% 남짓이라 하니 관련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곽 위원장은 앞으로 2~3주 안에 관련 사교육 종합대책을 발표한다고 했는데 여기저기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무엇보다 걱정되는 점은 공교육 정상화의 상이 다르다는 것이다. 학교 교육은 방과 후가 아닌 방과 전 정상 수업시간에 의해 완성되어야 한다. 이 시대 학교가 할 일은 학원이 키워내지 못하는 진짜 학력(민주시민 의식, 창의력, 잠재력, 비판력, 소통력)을 키워내야 한다. 그러나 새 정부는 이러한 노력보다는 공교육의 희망을 사교육에서 찾고 학교를 학원화하는 것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비록 고교가 대학 입시에 볼모로 잡힌 상황에서 대입 준비와 관련해 공교육이 사교육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해서 무조건 학원을 방과후 학교로 끌어들이는 것을 정부가 나서서 장려하고 예산을 지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일제고사다, 수능시험이다 정답이 오직 하나인 객관식 문제를 수년 동안 목숨 걸고 치른 아이들에게 창의력과 비판력은 사라져 창의적 인재가 나올 수 없는 구조인데 학교까지 밤낮으로 학원 흉내를 내며 사(死)교육, 문제풀이 교육을 용인하면 대한민국 미래 기획이 불가능해진다. 무상교육 시대에 방과후 학교 수업료를 다시 낸다는 것도 잘못된 것이다. 학부모들은 줄어든 학원비 때문에 일단 환영할지 모르나 학교에 내는 소액 사교육비는 괜찮고 학원에 내는 사교육비는 안 되는가? 지금 학부모들이 세계적인 경기침체에도 사교육비를 줄이지 못하는 이유는 대학을 못 갈까 봐가 아니라 ‘대입 배치표’상의 한 등급이라도 높은 대학에 자녀를 합격시키기 위해 발버둥치기 때문이다. 대학 가기 유리하다고 소문난 자율형 사립고교가 동네마다 세워지고 고려대가 보정점수 알파값을 내세우며 특정 고등학교들을 우대하는 이상, 취업과 결혼 전선에서 서울대, 연·고대 졸업자에게 보정점수를 주는 한 사교육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런 현실에서 새 정부가 입시 중심의 교육제도에 대한 진지한 재고 없이 사교육비를 반으로 줄인다며 방과후 학교 정책을 대표 정책으로 내세우겠다는 것은 실패할 것이 뻔한 정책을 가지고 우선 인기를 얻고 보겠다는 정치적 계산으로 교육문제를 접근하는 것이다.

새 정부는 지난 1년간 공교육 정상화의 본질을 혼동하고 대학 서열문제를 방치하면서 획일적이고 서열화된 교육을 강조했다. 영어 몰입교육부터 시작된 새 정부의 무한경쟁 교육 시나리오는 지난 1년으로 충분하다. 이제 와서 입시 공부 주무대를 학원에서 학교 교실로 옮긴다고 해서 공교육 정상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새 정부 교육개혁 진원지가 미래기획위원회인지 교육과학기술부인지 현재로서는 불분명하나, 이번 조처로 학생들이 심야 학원 대신 교내 야간 자율학습실에서 문제풀이 기계로 변해가는 일이 없도록 새 정부는 공교육 정상화의 본뜻을 살려야 한다.

김명신 함께하는 교육시민모임 공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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