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명돈 서울대 의대 감염내과 교수
기고
멕시코에서 나타난 새로운 인플루엔자가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이미 북미 대륙을 넘어서 아시아, 유럽 대륙까지 진출한 이번 인플루엔자는 2일 현재 16개국에서 658명을 감염시키고, 17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달 26일 멕시코에서 귀국한 여행객에게서 이 병이 확인되었고, 외국에 간 적이 없는 의심환자도 발생하여, 벌써 국내 확산 단계에 들어간 것이 아닌가 우려하고 있다.
인플루엔자의 세계 대유행은 지난 500년 동안 19번이나 일어났다. 20세기에만도 스페인독감(1918년), 아시아독감(1957년), 홍콩독감(1968년) 등 세 번의 위기가 있었다. 무려 14만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독감이 치명적이었던 까닭은 원인 바이러스가 전혀 새로운 것이기에 면역을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데 있다.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면역을 가진 사람이 늘고, 더불어 바이러스의 독성도 점차 약해졌다. 그 결과, 이제는 이 바이러스에 걸리더라도 가벼운 감기나 심한 몸살을 앓고 회복되는 것이 보통이다.
이번 유행을 일으킨 바이러스의 조상은 바로 스페인독감을 일으킨 바이러스(H1N1)이다. 1918년 지구상에 나타난 이 조상 바이러스는 돼지에도 침입하였고, 그 후 80년간 돼지에게 감기를 일으키며 후손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 후손 바이러스의 변종이 돌연 사람에게 뛰어들어 이번 유행을 일으킨 것이다.
멕시코에서 시작된 이번 대유행의 핵심 이슈는 확산 속도가 아니라 독성에 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걸리더라도 감기나 몸살 정도로 앓고 끝난다면 걱정할 일이 아니다. 멕시코에서는 2000명이 넘는 폐렴환자가 발생하여 100여명이 숨졌다. 그러나 다른 나라 상황은 겨울마다 겪는 인플루엔자 정도로 보이며, 사망자도 아직 없다. 이렇듯 이번 유행의 치명률은 아직 가늠하기 어렵다.
정부는 현재 환자 발견과 격리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전략은 효과를 거둘 수 없을 것이다. 스페인독감 유행 때 미 해군 부대는 발병하는 군인을 모두 즉각 격리하였으나 유행을 막지 못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인플루엔자 환자는 발병 하루 전부터 벌써 바이러스를 퍼뜨리기 시작하는 특성이 있다. 같은 이유로 공항에서 발열 환자를 가려내는 작업도 국내 유입을 막을 수 없다.
예방접종도 아직 해결할 숙제가 많은 전략이다. 우선 백신을 만드는 데 적어도 6개월이 걸린다. 백신의 투여량과 접종 횟수를 알아보고, 부작용을 확인하는 임상시험에 다시 수개월이 더 필요하다. 백신공장의 생산능력에 한계가 있어 전국민에게 투여할 물량 확보도 문제다. 치료제를 추가로 살 수 있는 예산을 확보하였다지만, 우리보다 먼저 주문을 낸 나라들 뒷줄에 서서 기다려야 한다.
전염병을 막는 다른 전략은 전염 경로를 끊는 것이다. 이 전략은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어도 가능하다. 에이즈 예방에 콘돔을 사용하거나, 콜레라 유행 때 물을 끓여 먹는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인플루엔자의 전염 경로를 끊는 방법은 기침 에티켓을 지키고, 손을 자주 씻는 것이다. 기침 에티켓이란 기침할 때 주변에 바이러스를 퍼뜨리지 않도록 입을 가리는 예절을 말한다.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코나 입을 손으로 만지는 일이 많은데, 만약 손에 바이러스가 묻어 있으면 이때 감염이 일어난다.
몸 밖에 있던 병원체를 코나 입 가까이 가져와서 몸속에 침입하기 쉽게 도와주는 것은 바로 우리의 손이다. 이것저것 만지면서 오염된 손은 많은 전염병의 공범인 셈이다. 이번 유행을 계기로 기침 에티켓과 손 씻기를 실천하자는 전국민 캠페인을 제안한다.
오명돈 서울대 의대 감염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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