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봉 미국 텍사스주립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기고
지난달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 곽승준 위원장이 밝힌 밤 10시 이후 학원 교습시간 규제 방침에 대해 민주당이 최근 곽 위원장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뜻을 내비치며 정부 여당이 구체안을 마련해 오면 심도있게 검토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방침은 우리 아이들과 청소년들을 지옥 같은 사교육의 굴레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려는 정부의 시도로서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다.
밤늦도록 여러 학원을 전전하는 우리나라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건강과 행복을 추구할 인간의 기본권을 잃어버린 지는 이미 오래다. 이제 어른들은 우리 아이들과 청소년들에게 그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행복추구권을 돌려주어야 한다. 무엇보다 입시교육 지상주의의 상징인 학원의 늪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 아이들과 청소년들을 글로벌 인재로 키우는 첫걸음이다.
우리 학생들의 공부시간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편이다. 공부시간으로만 따지면 우리나라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가장 많이 나와야 한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한국에서 이른바 일류대를 나온 사람도 미국이나 선진국에 유학을 가서 학위를 받는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공부에 투자하는 나라에서 공부한 학생이, 결국은 더 적은 시간을 공부에 투자하는 나라에 가서 어렵게 학위를 받는 셈이다.
필자가 미국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느낀 점 가운데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계 학생들과 미국·유럽 출신 학생들의 가장 큰 차이점은 아시아계 학생들이 서유럽 출신 학생들보다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아시아계 학생들은 자기 생각과 의견을 조리 있고 설득력 있게 다른 사람 앞에서 표현하고 발표하는 능력이 부족한 편이다. 서유럽 출신 학생들이 창의적인 사고력과 발표력, 표현력에서 아시아계 학생들보다 뛰어난 배경에는 어려서부터 다양한 경험과 창의적인 사고력 계발을 할 수 있는 교육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학교에서 학생들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학습 진도 외에 악기·운동·토론 등도 교과과정에 포함해 놓았다. 모든 학생이 악기를 배우거나 합창단 활동을 하도록 했으며, 운동을 한 가지 이상 하도록 지도하고 있다. 이와 함께 학생들을 모둠으로 나누어 프로젝트형 과제를 수행하도록 한 뒤, 학급 전체가 모인 자리에서 수행한 과제를 발표하도록 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창의적인 사고력을 높이고 토론능력과 발표력 향상 기회를 갖게 된다. 미국 학생들은 한국 학생들처럼 대학 입시를 위해 천편일률적인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집에 돌아와서는 자신들이 관심 있고 좋아하는 분야를 즐기거나 연구한다. 이런 노력으로 학생들은 자유로운 사고와 창의적인 생각, 풍부한 감성을 키울 수 있는 것이다.
학원 교습시간 규제에 대해 실효성이 없는 정책이며 음성적인 사교육 시장만 키우는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정부는 이런 우려가 현실이 되지 않도록 법적·제도적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심야학원에 매여 있는 우리 아이들과 청소년들을 가정으로 돌려보내 다양한 경험과 활동을 통해 창의력과 감성을 계발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심야학원은 틀에 박힌 교육을 해 시험 잘 보는 학생을 양성하는 데는 적합할지 모르나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는 데는 적합하지 않은 곳이다.
최진봉 미국 텍사스주립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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