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구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기고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해 국가 성장과 과학기술인의 사기를 돋우자는 취지로 국내 몇몇 기업체가 과학기술 분야 상을 제정해 해마다 시상하고 있다. 지금까지 수상자를 보면 외국에서 활동중인 한국계 과학자가 다수를 차지한다. 비슷한 능력의 연구자가 외국에서는 자기 능력을 발휘하는데 국내에서는 상대적으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 수는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데 우리는 언제 첫 수상자가 나올지 예측도 못하는 상황이다.
왜 국내에서는 파급효과가 큰 연구가 진행되기 어려운가? 이는 국내의 기초연구를 위한 여건이 상대적으로 취약하기 때문이다. 실패 확률이 있는 기초연구보다는 선택과 집중 형태로 단기간에 성과가 나올 수 있는 개량연구나 응용성을 기대하는 기획된 대형과제 위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파급효과가 큰 창의적 연구결과는 기획될 수 없다. 선진국과의 치열한 경쟁을 넘어 지속적인 국가 발전을 이루려면 자생력이 있는 기초연구와 이로부터 파생되는 원천기술이 필요하다. 정부에서도 기초연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의 35%를 기초연구에 투입해 미래 국가 과학기술 발전을 선도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 일환으로, 분산됐던 지원체계를 통합해 국가 기초연구 활동을 종합적으로 지원하는 연간 예산 2조7000억원 규모의 한국연구재단이 오는 6월 출범한다고 한다. 지금까지 연구지원 기관들은 정형화된 평가제도로 말미암아 때로는 편향된 지원과 때로는 연구자의 기대에 어긋난 평가 결과로 신뢰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평가의 공정성에 관한 규정 때문에 동일 기관 소속이나 동문이라는 등의 이유로 전문가들이 평가자 명단에서 제외되고, 과제 분야와는 거리가 먼 비전문가들이 창의성보다는 계량화된 점수에 의존해 평가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실패도 인정할 수 있어야 하며 수치화한 계량적 평가보다는 독창성을 보고 과제 선정을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이는 연구재단이 연구계를 포함한 사회 전반의 신뢰를 받을 때 가능하다.
한국연구재단 설립을 계기로 기초연구 기반이 튼튼해지고 이로부터 파급효과가 큰 연구성과가 나올 수 있기를 바라며 몇 가지 제안을 한다.
첫째, 연구재단은 연구과제 평가와 관리 등 연구관리 업무의 전문성을 높이고, 정부 연구개발 중 기초연구 사업에 대한 기획능력을 키워 국가 기초연구 사업에 대한 ‘싱크탱크’ 구실을 해야 한다. 둘째, 현재의 사업별 예산 배정을 벗어나 학문 분야별 특성에 맞는 지원이 가능하도록 분야별 예산을 편성해 지원하기를 바란다. 개인별 연구가 더 필요한 분야는 개인 과제 위주로, 협력연구가 필요한 분야는 집단 연구과제 위주로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독창성이 있는 과제를 발굴 선정할 수 있도록 과제의 평가 선정을 분야별 전문 연구관리자(프로젝트 매니저)의 책임제로 운영하고 과제 선정도 수시로 하기 바란다. 많은 논란이 예상되는 만큼 해당 분야에서 신뢰를 받는 사람을 전문 연구관리자로 활용하되 이들의 책임성과 아울러 보호책도 마련해야 한다.
관계부처에서는 기초연구사업에 대한 정부 연구개발 정책 방향을 제시하되 기초연구행정 업무에 관한 연구재단의 전문성을 인정해 연구재단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 외부 간섭에 흔들리지 않아야 사회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다. 한국연구재단이 어둠 속의 촛불 구실을 하기를 기대한다.
김정구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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