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논설위원
아침햇발
바야흐로 정당마다 내홍의 계절이다. 한나라당에 이명박-박근혜 싸움이 있다면, 민주당 쪽에는 정세균-정동영 다툼이 있다. 둘 다 주류 대 비주류 대결이라는 공통점을 지니지만, 싸움의 수준 차이는 적지 않다. 한나라당에 비하면 민주당 쪽 다툼은 흥미나 긴장도, 관객 동원의 흥행성에서 훨씬 떨어진다. 당사자들 처지에서야 결코 물러설 수 없는 건곤일척의 싸움이겠지만, 외부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가진 것도 별로 없는 가난한 집구석의 시시한 진흙탕 싸움처럼 보인다.
대결의 두 주역인 정세균 민주당 대표와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은, 당사자들께는 실례되는 이야기지만, 모두 선이 굵은 정치인과는 거리가 먼 분들이다. 좋게 말해 온건 합리적이지만, 화끈하다거나 통이 큰 것과는 무관한 정치 행로를 걸어왔다. 그러다 보니 싸움의 양상도 지리멸렬해 관객들에게 별다른 재미를 선사하지 못한다.
정동영 당선자는 전주 덕진에서 거둔 압도적인 승리, 그리고 신건 전 국정원장의 무소속 동반 당선에 크게 고무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승리가 만방에 자랑할 만한 위대한 승리로 보이지는 않는다. 고향에서 얻은 높은 득표율이라는 빛이 강할수록, 전국 단위의 경쟁력 부족이라는 이미지의 그늘은 더 짙어진다. 탈당 등의 무리수에다, 자신의 위상을 ‘향토 정치인’ 정도로 격하시키며 스스로 정치적 고도제한을 가한 치명적 대가를 치르고 거둔 상처뿐인 영광이다.
정세균 대표. 명실상부한 전북의 새로운 맹주를 꿈꿔 온 그에게 정 전 장관의 복귀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정치라는 것은 상대방의 정치적 실체와 힘을 솔직히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그것은 정동영 전 장관의 ‘고향 앞으로’에 대한 세간의 비판이 거센 것과는 무관한 것이다. 이런 현실을 무시할 때 또다른 무리수가 시작된다. 당내 경선이든 예비선거든 뭔가 정상적 공천 절차를 밟지 않고 전략 공천으로 건너뛴 것부터가 그렇다. 그 한계는 이미 선거 결과를 통해 나타났다.
사실 정-정 싸움이 허무한 이유는 다툼의 명확한 콘텐츠가 없기 때문이다. 정 당선자는 “다시 돌아와 당을 살리겠다”고 다짐했지만 그 내용이 무엇인지는 알 길이 없다. 대선 패배 이후 소용돌이를 거듭해 온 국내 상황에 침묵 모드로 일관해 온 탓에 민주당의 노선이나 대여 투쟁에 대한 평가를 할 형편도 안 된다. 정세균 대표도 정 당선자 쪽의 지도부 비판이나 탈당에 대한 자기반성 부재 따위를 탓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논리가 없다. 상대방에 대한 증오심과 복수심을 빼면 둘 다 남는 게 없다. 그래서 이 싸움은 치열할수록 공허하고 유치하기 짝이 없는 좁쌀영감들의 티격태격처럼 보인다.
오히려 이들의 본심은 다른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 싸움의 본질은 당의 헤게모니를 둘러싼 권력투쟁이요, 좀더 현실적으로는 내년 지방선거의 후보 공천권 행사를 둘러싼 각축전이다. 두 사람 모두 겉으로는 원칙을 말하지만, 원래 깃발이 고상할수록 그 밑에 숨어 있는 욕심은 더 야무진 법이다. 그런데 현실이 그렇다면, 그런 현실 자체도 인정해 정치적 타결책을 찾아가는 게 순리다.
민주당은 요즘 정부 여당의 실책으로 반사이익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4·29 재보선의 승리도 결코 민주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적의 실수’ 덕분이었다. 하지만 이런 반사이익이 앞으로도 계속되리라는 보장은 전혀 없다. 당의 이념적 지향점을 분명히 하고, 체질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당내에서 치열하게 싸워야 할 대목도 많다. 그런 것에 비춰 보면 정-정 싸움은 너무 무의미하고 찌질해 보인다.
김종구 논설위원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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