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기고
‘용산참사’가 발생한 지 벌써 넉 달이 되어간다. 사건 직후부터 경찰특공대의 투입 등 경찰의 과잉진압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검찰은 화재와 사망에 대한 경찰의 책임을 부정하면서 농성자들만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 등의 혐의로 기소하였다. 검찰 수사의 편파성에 대한 논란은 이제 법정에서 가려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재판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검찰이 갖고 있는 미공개 수사기록을 변호인에게 모두 공개하도록 법원이 결정을 내렸는데도, 검사는 그 수사기록의 공개를 계속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변호인단은 재판부에 미공개 수사기록의 열람·등사가 허용될 때까지 재판을 연기해 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검찰은 용산참사 현장에 투입되었던 경찰특공대원은 물론 경찰 지휘라인의 간부들에 대해 광범위한 수사를 진행하였다. 수사기록도 방대하다. 하지만 재판과정에서 검찰은 판사의 명령을 어기면서까지 수사기록의 상당부분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검찰이 공정하고 떳떳하게 수사했다고 자부한다면 모든 수사기록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수사기록의 공개거부는 명백한 형사소송법 위반이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법원의 열람·등사 허용 결정이 있으면 검사는 수사기록을 공개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수사기록 열람·등사권은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과 공정한 재판을 담보하기 위한 핵심 권리로 규정되어 있다. 헌법재판소도 “검사가 보관하는 수사기록에 대한 변호인의 열람·등사는 실질적 당사자대등을 확보하고 신속·공정한 재판을 실현하기 위하여 필요불가결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므로 법원의 결정을 무시한 채로 수사기록의 열람·등사를 거부하는 검사의 태도는 단순히 형사소송법 규정을 위반한 것 이상으로, 헌법적 권리인 피고인의 방어권과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훼손하는 중대한 위법행위이다.
더구나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검찰청법 제4조)로서 사건의 진실을 공정하게 규명하기 위하여 피고인에게 유리한 사실도 조사하여 증거로 제출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수사기록의 투명한 공개를 거부하는 것은 오로지 농성 철거민들의 단죄를 위하여 검사의 진실규명 의무와 공익 의무를 내팽개치는 것과 같다. 법치주의 확립에 앞장선다고 나름대로 자부하고 있는 검찰이 이처럼 법치주의를 훼손하는 행동을 서슴지 않는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검찰은 용산참사 사건의 수사에 대해 거대한 퍼즐맞추기와 같았다는 소회를 이야기한 바 있다. 그런데 검찰은 수사 결과 중에서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황이나 증거는 쏙 빼고 피고인에게 불리한 증거만을 퍼즐맞추기에 사용한 것 같다. 용산사건에 대한 검찰 나름의 정답 그림을 미리 그려놓고 그에 어울리는 증거만을 취사선택한 것은 아닌가. 만약 검찰이 공개하지 않은 수사기록을 모두 놓고 퍼즐을 맞추면 검찰이 머릿속에 그린 정답 그림과는 전혀 다른 그림이 나올 수도 있다. 결국 검찰은 용산참사 사건의 실체를 특정한 방향으로 몰고 가려는 의도로 법치주의의 기본원칙과 형사소송법 규정을 위반하는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비단 용산참사 사건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사태는 형사사건에서 진실의 왜곡과 조작이라는 권력의 유혹에 길을 터줄 것인가, 아니면 그 유혹의 길을 차단함으로써 공정한 재판을 통해 진실규명에 좀더 다가갈 것인가 하는 선택의 문제로 인식하고 엄중하게 대처해야 한다.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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