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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임범의노천카페] 시골 간다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등록 2009-05-22 21:59수정 2009-09-16 11:02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임범의노천카페
요즘 서울 시내는 온통 공사중이다. 언제는 안 그랬겠냐마는 그래도 광화문, 종로1가, 을지로 등은 보기 좋든 싫든 오래도록 자기 개성을 간직해 온 곳이었다. 최근엔 이곳마저 완전히 바뀌고 있다. 그럼 새로 들어서는 이 건물과 풍경은 오래갈까? 그런 기대를 갖지 않는 건, 그래서 새 풍경에 애정을 주지 못하는 건 나뿐만이 아닌 것 같다. 한 미술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과거를 잊어버릴 뿐만 아니라, 현재와 미래까지도 미리 잊어버려 가면서 사는지도 모른다.

서울 아닌 곳은 다를까. 자유로를 따라 임진각 쪽으로 가다 보면 이런 현수막이 걸려 있다. ‘변화와 경쟁의 파주’. 사람 속에 부대끼고 치어서, 정말 변화와 경쟁에 지쳐서 근교로 나들이 가겠다고 달려온 서울 사람들에게 한 방 먹이는 것 같다. “쉬려거든 딴 데 가서 쉬어! 어딜! 우리도 열심히 살아서 너희들처럼 될 거니까 여기 와서 분위기 깨지 마!” 그 말이 맞다. 외지인의 휴식 욕구를, 열심히 살겠다는 현지인의 생활 욕구보다 앞세울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서울이 싫다고 시골로 내려가 사는 사람들이 있다. 서울 사는 이들도, 시골 가서 사는 생각을 몇 번 해봤을 거다. 어쩌다가, 시골에 내려가 사는 이들을 만나면 ‘저들은 행복할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주변을 기웃거린 경험이 있을 거다. 그런데 남의 삶이 행복한지 어떤지, 그 어려운 문제에 힌트를 얻으려면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그 궁금증은 관음증 섞인 무례한 시선을 동반하기 쉽다. 그런데 또 마찬가지로 시골 가서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서울 사람들의 관찰 대상이라는 걸 안다. 은둔형이 아닌 경우, 그들은 대체로 자기 삶의 공간들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더러는 실제로 행복한지 아닌지와 관계없이 ‘우린 행복해’라고 과장되게 말할 수도 있다.

서울과 시골의 행복(하게 보이기) 경쟁? 최근 개봉한 홍상수 감독의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 그런 게 나온다. 이 영화의 주인공도 서울 살다가 시골로 내려가서 사는 사람들이 행복한지 궁금해한다. 그는 제천과 제주도에서 남녀 두 쌍을 만난다. 두 쌍 모두 서울서 그곳으로 내려와 살고 있다. 둘 모두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걸 잘 믿지 못하는 주인공은 그들이 감추려고 하는 것을 보고 싶어 한다. 과시욕과 관음증의 이 불일치는 결국 주인공과 이 두 쌍의 관계에 사달을 낸다.

시골서 행복하다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는 이들에게 서울 놈이 나타나서 ‘너네 정말 행복해?’ 하며 고춧가루를 뿌린 셈인데, 그랬다고 해서 시골 사는 이들이 그 뒤에 불행해질 것 같진 않다. 그 일을 계기로 더 행복해질지도 모른다. 문제는 주인공이 추구하는 행복이 뭐냐이다. 전부터 홍상수 영화에선, 예쁜 여자가 나오면 도화선에 불붙은 다이너마이트처럼 불안해지는데 이 영화는 배경이 시골이다 보니 더 그렇게 느껴진다. 아닌 게 아니라, 예쁜 여자 앞에서 주인공은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지 못한다. 예쁜 여자를 보고 혹하는 마음, 그게 주변과 평화롭게 공존하지 못하는 걸 스스로 잘 아는 주인공이 바랄 수 있는 구원의 길은 하나다. 천생배필 같은 여자를 만나 딱 붙어사는 것. 제주도에서 만난 유부녀에게 자기랑 그렇게 살자고 했더니 여자가 말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서울 살든 시골 살든, 행복은 여전히 어려운 말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행복하다고 과시하거나, 행복하냐고 되물으며 산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임범 대중문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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