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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새 아침은 죽음의 묘지 위에서 열린다 / 이도흠

등록 2009-05-26 21:43

이도흠  한양대 국문과 교수
이도흠 한양대 국문과 교수
기고
우리의 죄목은 늘 불가능한 꿈을 꾼다는 것이었다. 80년대에 우리가 하는 일에 가능성이 있느냐고 한 사람이 물었다. 그때 “들판에 홀로 핀 들국화를 외롭다고 노래하는 것은 시가 아니듯, 가능성이 있다고 저항하는 것은 기회주의자의 처신이다. 우리는 불가능하기에 그 꿈을 향해 우리를 던진다”고 대답하였다. 우리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눈부시고 환한 길을 버리고 어두운 가시밭길을 택하였다. 우리라고 권력과 자본과 명예가 주는 달콤한 인생의 환희를 모르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길이 우리가 이 땅의 사람으로서 갈 길이라 생각하였기에, 그 꿈을 버리라고 채찍질을 하고 침을 뱉고 매도하고 몸을 묶고 고문을 하고 죽음으로 위협해도 꿋꿋하게 그 길을 걸었다. 우리는 돈도, 총도, 정보도, 권력도 없었지만 그 모든 것을 갖춘 이들은 우리를 늘 두려워하였다. 한 명의 열 걸음이 아니라 열 명이 함께 한 걸음을 걸을 때 총을 녹이고, 한 명의 꿈이 열 명으로 전염될 때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뀜을 그들은 잘 알았기 때문이다.

노무현, 그는 불가능한 꿈을 꾸는 자의 짱이었다. 강력한 군대와 정보부를 가진 독재정권에 맞서서 가난하고 억압받는 자의 인권을 외쳤고, 금강석보다 더 견고한 지역주의에 틈을 내고자 온몸을 던졌고, 검찰과 족벌언론, 골통 보수와 정면으로 맞짱을 떴다. 그의 무기는 도덕성과 신념! 그 두 가지만으로 그는 대통령에 오르는 기적을 이루어냈다. 그날, 핍박받고 가난한 삶을 살던 이들은 불가능한 꿈이 이루어지리라는 기쁨에 환희의 눈물을 흘렸다. 그가 그 자리에서 쫓겨나려는 날, 촛불을 들고서 열 사람이 꾸는 꿈이 얼마나 아름답고 강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엠비(MB) 집단은 촛불이 무서웠고 그를 죽여서만 꿈을 사라지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어느날 그를 죽이는 것이 총과 칼이 아님을 깨달은 그들은 도덕성에 흠집을 내기 시작하였고 그는 결국 죽음을 맞았다. 그의 죽음이 정치검찰과 족벌언론과 엠비가 공모한 정치적 타살임을 우리는 잘 안다. 하지만, 부엉이바위에 몸을 던진 자는 바로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의 꿈을 꾸던 주체로서 노무현이었다. 아폴론의 신탁대로 모든 것이 결정된 삶이었지만, 내 두 눈을 찌르는 것은 신이 아니라 정녕 인간인 나의 손이라고 외친 오이디푸스처럼.

파괴가 창조이듯, 죽음은 삶이다. 인간은 자신이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유한성을 인식할 때 어떻게 살 것인지 성찰하며 실존의 삶을 산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이가 남은 1분 1초를 치열하게 살아가고 온몸을 던져 사랑하듯, 죽음에 다가갈수록 삶은 의미로 반짝인다. 김주열 열사의 죽음이 4월혁명을 낳고 시민군의 꽃비가 광주를 절대공동체로 만들고 조국을 민주화시켰듯, 모든 새로운 아침은 죽음의 묘지 위에서 문을 연다.

자유무역협정(FTA)이나 이라크 파병을 추진할 때 꿈의 포기를 비판했던 우리는 그가 거룩하게 죽어서 산 자임을 알기에 그를 추도한다. 몸은 죽었지만, 그가 추구하였던 정신은 빛이 되어 어두운 이 땅을 밝혀주고 화살이 되어 수많은 선한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자들의 가슴에 꽂힐 것을 확신하기에 우리는 그를 보낸다. 이제 정의와 평등을 향한 고통과 번민을 덜고 고향에서 매일이 좋은 날이라며 편안히 쉬소서. 대신 우리는 당신께서 미처 이루지 못한 불가능한 꿈의 꽃을 당신의 무덤 위에서 피우오리다. 어두울수록 별은 맑게 반짝이고, 진정한 패배는 역사 안에서 승리로 잉태한다.

이도흠 한양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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