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구 기자
유레카
2002년 11월21일 서울 동숭동 대학로에 있는 한 맥줏집에서 노무현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문화예술인들과 만났다. 환대에 답하라는 주문에 그는 준비한 노래를 꺼냈다. 손수 기타를 퉁기며 ‘상록수’를 불렀다. 그런데 그는 정작 부르고 싶은 노래는 따로 있다고 했다. 그는 “과격하게 보일까봐 (보좌진들이) 자꾸 말린다”면서도, ‘사랑으로’를 부르라는 요청을 물리치고 이 노래를 끝까지 불렀다.
“사람 사는 세상이 돌아와 너와 내가 부둥켜안을 때, 모순덩어리 억압과 착취 저 붉은 태양에 녹아버리네. 사람 사는 세상이 돌아와 너와 나의 어깨동무 자유로울 때, 우리의 다리 저절로 덩실 해방의 거리로 달려가누나…” 1980년대 군사독재에 맞서 싸우던 이들이 즐겨 부르던 ‘어머니’란 노래였다. ‘변호사’ 노무현은 그런 노래를 알았기에 용기도 얻고 거리로 나설 수 있었다고 했다.
사람 사는 세상, 그의 꿈이었다. 그는 초선 의원이던 1989년 민중의 삶의 현실과 나라 상황을 쉽게 풀어 쓴 책에 그 제목을 달았다. 대통령이 됐다고 꿈이 바뀐 게 아니었기에, 고향으로 물러난 뒤 연 개인 사이트에도 그 이름을 붙였으리라. 그가 한 말을 그대로 옮기면, “오손도손 서로 돕고, 더불어 사는 세상”이다.
그는 살아 그런 세상을 못 봤다. 기득권의 벽은 꿈조차 불온시했다. 큰 벽 하나를 넘을 수만 있다면 대통령 자리마저 미련 없이 버리겠다는 그의 결기는 도리어 상당수 지지자들마저 등을 돌리게 했다. 같은 꿈을 꾸던 이들의 상징으로 남은 그는 외로운 표적이 됐다. 친구도 명예도 잃고, 그는 “나를 버려 달라”고 했다. 벼랑에 몸을 던져가면서까지 그가 온전히 지키려 했던 게 바로 그 꿈이었겠지. 아프고, 부끄러운 가슴에 문신하듯 그 꿈을 새긴다. 부디 편히 쉬소서.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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