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규 논설위원
아침햇발
‘불꽃의 정치인’ 노무현 전 대통령이 오늘 우리 곁을 영영 떠난다. 63년 영욕의 삶을 모두 불사르고 한 줌의 재가 되어 고향 봉하마을로 돌아간다. 이로써 그의 마지막 생애 1년여를 짓눌렀던 이명박 대통령과의 갈등과 알력에서도 벗어나게 됐다. 이 세상에서의 ‘노무현-이명박 대결’이 막을 내린 것이다.
두 사람은 사상과 철학이 전혀 딴판이지만 성장 배경이나 성격은 매우 비슷하다. 둘 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입신출세를 했다. 한 사람은 변호사로, 또 한 사람은 기업가로 성공을 거뒀다. 둘은 어려움을 뚫고 정상에 오른 사람답게 자신이 옳다고 일단 판단하면 물러서지 않는 성격도 빼닮았다. 그래서 ‘노명박’이라는 신조어가 생기기도 했다.
비슷한 성격의 사람이 흔히 그렇듯이, 두 사람은 궁합이 맞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2007년 12월28일 대통령 당선인 신분으로 노무현 당시 대통령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후임자가 전임자를 예우하고 잘 모시는 전통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 뒤의 전개는 정반대였다. 이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이 취한 정책의 대부분을 좌파로 규정하고 ‘노무현 지우기’에 올인했다. 남북 화해는 압박으로, 종합부동산세 신설은 폐지로, 기자실 폐쇄는 부활로 돌려놨다. 지난해 촛불시위 이후 터진 국가기록물 유출사건을 계기로 급기야 둘 사이의 감정대립이 물 위로 떠올랐다. 이 대통령 쪽의 압박에 화가 난 노 전 대통령이 공개편지를 통해 “‘전직 대통령을 잘 모시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을 오해해도 크게 오해한 것 같다”고 배신감을 토로한 것이다.
이후 이 대통령 쪽의 노 전 대통령 압박은 군사작전 하듯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측근, 가족, 마지막엔 그의 목에까지 사정의 칼날이 다가왔다. 검찰과 국세청 등 권력기관에 보수언론까지 가세한 전방위 공세였다. 결국 그는 벼랑 끝에 몰렸고 떨어지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었다. 이렇게 1차 승부는 쉽게 끝났다. 많은 사람들은 이를 두고 이명박 정부에 의한 ‘정치적 타살’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사람들은 조선시대의 참혹한 정적 제거 방식인 사화에 빗대어 ‘기축사화’라고도 불렀다.
이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난 23일, 청와대 참모들에게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에 어긋남이 없도록 정중하게 모시라”고 지시했다. 당선인 시절의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반성이자 핍박을 가했던 상대에 대한 승자의 마지막 예의 표시로 받아들이고 싶다.
한 사람은 가고, 한 사람은 남았다. 하지만 둘의 대결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대결의 구도가 ‘죽은 자’와 ‘살아 있는 자’로 바뀌었을 뿐이다. 더구나 이 대통령은 이제 무장해제된 전직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적 추모 열기 속에서 화려하게 부활한 ‘노무현 정신’이란 강적과 상대해야 한다. 노무현 정신이란 지역주의 타파, 권위주의 청산, 남북 화해, 사회적 약자 및 소수자 보호, 검찰 개혁 등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죽은 자와의 대결에선 권력기관도 언론도 동원할 수 없다. 오로지 ‘정신 대 정신’으로 싸워야 한다. 관전자들은 살아 있는 자보다 죽은 자의 편을 들 가능성이 크다. 이 대통령에게 매우 불리한 싸움이다. 여기서 지지 않으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노무현 정신을 끌어안는 것이다. 최소한 비기는 길이다. 또 하나는 노무현 정신을 압도하는 ‘이명박 정신’을 내놓는 것이다. 이기는 길이다. 이도 저도 아니면 모두의 불행이다.
오태규 논설위원 o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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