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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나는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 / 조희연

등록 2009-06-01 21:16

조희연  성공회대 통합대학원장
조희연 성공회대 통합대학원장
시론
온 나라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내고 애도와 추모에 휩싸여 있다. 이 깊은 애도와 탄식, 추모, 눈물의 의미를 나는 몇 번이고 곱씹어보게 된다. 이런 거대한 추모를 ‘계승’하기 위해서, 일부에서 검찰총장 등 관련자 처벌을 요구하면서 정치쟁점화하고 있다. 고인의 서거 이후, 피의자 혐의를 계속 언론에 유포하고 전직 대통령을 소환해 놓고도 20일 후에 추가 증거자료를 들이대면서 고인의 정치적 신뢰를 손상시키고자 했던 검찰 수뇌부를 포함하여 이명박 정부와 보수언론 등에게 당연히 추모자들의 분노가 향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관련 책임자 처벌, 심지어 경호원 처벌로 ‘노무현 이후’를 왜소화하는 것에 반대한다. 이는 고인이 모든 시대적 논란을 비극적으로 싸안고 가고자 했던 뜻에 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우리가 영결식 이후 깊이 고민해야 할 것은, 고인의 죽음을 어떻게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정신적 자산으로 만들 것인가 하는 점이다.

고인의 죽음이 일부 적극적인 지지자들을 넘어서서 국민적인 애도와 추모로 확산된 근저에는 그의 치열했던 삶에 대한 우리들의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날마다 비굴하게 그리고 자기 원칙을 버리고 타협하면서 적당히 살아간다. 그러나 ‘바보 노무현’은 치열하게 자신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때로 손해 보면서 자기 방식대로 올곧게 살고자 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을 자신의 죽음으로까지 견지하고자 했다. 전직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고인의 또다른 인간적인 그 무엇이 우리를 감동시킨 것이다. 이것은 보수와 진보의 경계를 넘는 것이다.

우리는 고인이 ‘아무도 원망하지 마라’고 남긴 유언을 거슬러, 고인을 새로운 분노와 단기적인 투쟁의 동력으로 삼겠다는 생각을 넘어서야 한다. 비록 고인이 재임 기간 펼친 정책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삶 자체의 치열함이 감동을 주는 대통령’으로서 국민 모두의 마음속에 남아 있도록 하자.

그의 재임 기간 일련의 경제정책에 반대했던 사람들도 그가 끝내 시장권력과 재벌권력에 투항하지 않고자 고뇌했던 대통령으로 추모하게 될 것이다. 그의 통치 기간 내내 세금폭탄으로 이를 갈았던 사람들도 그가 서민을 위한 대통령이고자 깊은 밤을 고민했던 대통령이라는 점을 공유하게 하자. 그의 통치에 대해서 비판하고 돌을 던졌던 사람들도 국민장 기간에 안타까워하고 함께 그를 추모하였다. 온 국민이, 심지어 그를 미워했던 국민조차도 그의 죽음 앞에서 함께 숙연해하는 이런 국민적 정념이 지속되도록 하자.

물론 모든 책임의 출발은 현 정부에 있다고 나는 생각하지만, 우리가 고인의 문제를 직접적인 연속투쟁의 이슈로 가져가면 갈수록, 고인은 점점 더 ‘쟁투(爭鬪)의 유산’으로 되어갈 것이다. 비록 그가 새로운 항쟁의 불씨가 되지 않아도, 또한 비록 그가 이명박 정부를 무너뜨리는 ‘직격탄’이 되지 않아도, 이미 그는 향후 우리 사회의 진보를 추동하고 민주주의를 지키는 큰 정신적 버팀목이 되었다. 지난 민주정부 10년을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하고 역주행하는 현행 정책들에 대해서, 고인의 죽음은 이미 그 도덕적 정당성을 박탈했다.

해가 지면 잠시 어둠과 침묵의 시간이 있다. 그 어둠과 침묵의 시간이 있기에 떠오르는 태양이 더욱 눈부신 것이 아닐까. 물론 나는 저들의 반응을 지켜볼 것이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고인의 죽음을 가지고 싸우지 않겠다. 단지 고인의 ‘치열한 정신’으로 치열한 6월로 달려갈 것이다.”

조희연 성공회대 통합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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