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시론] 절반짜리 기자 / 권혁남

등록 2009-06-02 21:40

권혁남  전북대 신방과 교수
권혁남 전북대 신방과 교수
1995년 10월30일치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과거에는 고분고분하던 언론이 전직 대통령에게 대들다’라는 제목 아래 “전임 대통령 노태우씨와 650만달러의 불법 정치자금이 관련된 부패 스캔들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과거에는 고분고분하던 한국의 언론들이 피를 요구하고 있다. … 한국에서 언론은 엘리트 직종으로 간주되고 있으며, 대부분의 언론인들은 권력층의 견해를 대중에게 전달하며 유교적 방식으로 그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을 그들의 일차적 임무라고 믿고 있다. 언론인들이 자주 정계와 관계에 진출하는 현상이 이런 태도를 강화시키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지 채 3년이 되지 않은 당시의 죽은 권력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에 대한 한국 언론의 하이에나와 같은 행태와 언론계의 치부를 매우 정확히 꼬집은 것이다. 이 신문이 지적한 우리 언론의 부끄러운 행태가 10여년이 지난 오늘에도 전혀 달라지지 않은 채 판을 치다가 결국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말았다.

권력의 양 수레바퀴인 검찰과 언론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몹시도 괴롭혔다. 검찰은 표적, 과잉 수사 진행 상황을 매일같이 노래 불렀으며, 보수언론은 검찰의 노래에 맞춰 신명나게 춤을 춰대며 더 빠른 장단을 주문하기까지 하였다. 보수언론의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흠집내기, 창피주기는 <조선일보> 4월27일치 김대중 칼럼에서 절정을 이르게 된다. “법정에 세우지도 말고 빨리 ‘노무현’을 이 땅의 정치에서 지우자. 노무현 게이트에 얽힌 돈의 성격과 액수를 보면, 그야말로 잡범 수준이다. 그저 노후자금인 것 같고 가족의 ‘생계형’ 뇌물수수 수준이다. 그래서 더 창피하다. 2~3류 기업에서 얻어 쓴 것이 더 부끄럽다.” 정당 대변인의 정치평론이라면 몰라도 명색이 정론지의 대표 언론인이라고 하는 사람의 칼럼치고는 심히 부끄럽다.

나폴레옹 황제는 “천개의 총검보다 단 4개의 적대적 신문이 더 무섭다”고 하였으나 노 전 대통령은 단 3개의 적대 신문으로부터 평생을 시달리다가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평소 그가 소망하였던 언론관은 권언유착을 끊고 권력과 언론의 건전한 긴장관계의 설정이었다.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당연한 언론관이지만 그게 쉽지만은 않았다. 보수언론은 노 정권의 권언유착 청산 노력을 편 가르기로 이해하였고, 권력과의 긴장관계를 적대관계로 설정하고 사사건건 노 전 대통령을 반대하고 일방적으로 한나라당만을 응원하였다.

신문·방송 겸영을 통한 이윤 극대화, 여론 독점을 통한 언론의 권력화를 꿈꾸는 보수언론의 욕망은 끝이 없는 듯 보인다. 이제 보수언론, 진보언론 가릴 것 없이 우리 모두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이 남긴 교훈을 되새겨 새롭게 달라져야 한다. 그것은 바로 저널리즘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인 공정성, 객관성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저널리즘에서 그것은 단지 구호로만 존재할 뿐이다. 언론인의 의식 또한 바뀌어야 한다. 정치와 언론, 재계가 한몸처럼 밀착되어 있는 이탈리아 언론계에는 ‘절반짜리 기자’란 말이 회자된다. 이는 기자들이 업무의 절반은 신문사 사주를 위해, 나머지 절반은 자신과 관련 있는 정치, 경제단체를 위해 일하는 것을 빗댄 말이다. 우리는 절반짜리 언론인보다는 온전한 언론인을 원한다.

정치·이념적으로 편향되지 않고, 사실에 근거하는 올바른 저널리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믿고 판단할 수 있는 정보를 얻을 수가 없다. 믿을 수 있는 정보가 없다면 민주주의는 존재할 수 없다. 기본 원칙에 충실한 언론, 이것 또한 노 전 대통령의 오래된 생각일 것이다.

권혁남 전북대 신방과 교수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