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기고] 시대착오적인 공안 탄압 / 민경우

등록 2009-06-04 19:06

민경우  전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
민경우 전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
지난 5월7일 국정원은 범민련 남측본부 이규재 의장을 포함해 주요 간부를 연행했다. 나는 오랜만에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실에 들러 범민련 관계자들에게 적용된 혐의를 살펴보았다. 영장은 지령수수, 기밀누설, 특수잠입탈출 등 살벌한 용어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1995~2002년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으로 재직 당시 두 번에 걸쳐 거의 동일한 혐의로 구속되어 이른바 ‘간첩’이 된 바 있는 나로서는 그저 그런 내용이었다.

남북관계란 이상해서 북한과 관련한 사건과 행사를 누가 하느냐에 따라 형량이나 적용 법률 자체가 달라진다.

이른바 북풍 사건이라는 것이 있다. 97년 한나라당 정재문 의원이 통일부의 허가 없이 북쪽 인사(안경호)를 만나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사건이다. 정 의원은 이로 인해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되어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았다.(2003.12.30) 나는 정 의원과 관련된 대법원 판결을 검찰 조사 과정에서 알고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정재문 의원이 만난 안경호씨는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 부부장이다. 내가 팩스나 전화로 접촉한 박용 범민련 공동사무국 사무국장과는 급이 다른 인물이다. 정 의원은 베이징 어느 호텔에서 만났을 것이고 대선과 관련한 중요한 대화를 나눴을 것이다. 반면 내가 전화나 팩스를 통해 나눈 대화는 6·15, 8·15를 기해 남북에서 치러진 통일행사 어쩌고 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나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어 3년6월을 선고받은 반면 정재문 의원은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으로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은 뒤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았다.

나와 정 의원의 차이는 무엇인가? 도대체 북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범법인가 합법인가? 만나서 나눈 대화 중 어디까지가 기밀이고 어디까지가 일상적인 대화인가? 그리고 궁극적으로 북한은 도대체 무엇인가? 38선 이남을 불법 점거하고 정부를 참칭하고 있는 반국가단체인가(국가보안법),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된 특수관계인가(남북교류협력법), 아니면 고도의 통치행위의 대상인가?

이를 판단하는 기준은 공안기관 마음대로다. 그러니 2003년부터 버젓이 길거리를 활보하고 다닌 이경원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을 6년이 지난 뒤에야 연행할 수 있는 것이다. 정권의 성격이 어떠냐에 따라 범법과 합법, 적용 법률이 달라진다면 그것은 이미 법이 아니다. 우리는 이런 사례를 미네르바, 신영철 대법관, <문화방송>(MBC) ‘피디수첩’ 등의 사건에서 똑똑히 보고 있다.

이번 범민련 사건이 갖고 있는 특징은 노무현 정권 5년간 진행된 민간 차원의 남북교류협력 사업을 어떻게 볼 것인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만약 박용이 북한 공작원이고 이경원 사무처장이 그의 지시에 따라 행동한 ‘간첩’이라면 지난 5년간 진행된 다수의 민간급 행사는 모두 북한의 대남 공작에 의해 진행된 반국가행위가 될 것이다. 여기에는 2005년 서울 상암경기장에서 진행된 남북 축구대회, 금강산에서 진행된 숱한 체육·문화 행사 등이 포함된다.

이번 범민련 사건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관과 6·15, 10·4 선언에 대한 입장과 태도를 묻고 있다. 한편에서는 남북대화를 제의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남북 교류협력을 국가보안법을 적용해 탄압한다면 남북대화를 제의하는 이명박 정부의 진심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민경우 전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