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경한 변호사
지난달 중순 국회에서 열린 검찰 기소권의 문제점에 대한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한 적이 있는데 발제자와 토론자 모두 법대 형사법 교수와 변호사들이었다. 검사만이 기소할 수 있는 기소 독점주의와, 혐의가 인정돼도 일정한 경우 기소를 하지 않을 수 있는 기소 편의주의의 문제점과 이에 대한 통제방안이 주된 쟁점이었다. 수사와 기소 여부가 검사의 자의·독선에 흐르고 정치적 영향에 좌우된다는 문제점이 우리 검찰에는 유독 많이 나타난다는 의견이 다수였고 통제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최근 몇 년 동안만 해도 수사와 기소권이 남용되는 사례를 수없이 볼 수 있다. 환경운동연합 최열 대표의 경우 횡령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기각되자 주변 사람 80여명을 이 잡듯이 뒤져서 알선수재 혐의로 다시 영장을 청구하였으나 기각되자 불구속 기소하여 재판중이다. 참여정부 시절 시민사회 수석을 지낸 이강철씨의 경우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가 검찰에서 100여명의 참고인을 조사하여 결국 구속했다. 대운하 사업을 하는 데 큰 걸림돌인 최대 환경단체의 대표를 구속시켜 환경운동을 약화시키려 한다는 여론이 꼭 오해일까. 최열이 뉴라이트 계열의 시민단체 대표였고, 이강철이 현 정권의 인수위 사람이었어도 주변 사람 80명, 100명을 이 잡듯이 수사했을까.
재작년 대선 무렵 이명박 후보의 주민등록등본 무단발급자를 신속히 구속 수사한 것이나 대선 직전에 이회창 후보의 대선자금을 수사한 것은 수사의 시기와 강도에서 형평성을 잃은 정치 편향적인 수사라는 법조인으로서의 생각이 잘못된 것일까.
작년 촛불시위 때 광고 게재와 기부금 모집 혐의로 대학생에 대해 3차례나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기각됐다. 지난해 8월1일 전기통신기본법 위반과 기부금품 모집 위반으로 영장을 청구했다 기각되자 8일에는 횡령죄를 추가했다. 역시 기각되자 9월28일 국가보안법 위반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을 더해 청구했으나 또 기각됐다. 촛불 관련 사건이 아니었다면 이 정도의 혐의로 3번이나 구속영장을 청구하였을까. 3번이나 구속영장을 청구할 정도로 죄질이 나쁘고 증거 인멸 및 도주 우려가 있는 피의자였다면 10개월이 넘도록 지금까지 기소를 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도 그 절차나 방식, 언론 플레이를 보면 표적 및 보복 수사요 수사의 기본도 지키지 않은 수사였음을 국민들은 다 알 것이다.
2000년 6월엔 법학 교수 43명이 삼성 이건희 회장 등 에버랜드 이사진과 계열사 사장 등 33명을 에버랜드 편법증여 사건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2003년 12월 공소시효를 하루 남겨두고 피고발인 33명 중 에버랜드의 전·현직 사장인 허태학·박노빈 두 사람만 특정경제가중처벌법의 배임 혐의로 기소하여 며칠 전에 대법원 선고가 있었다. 검찰은 2000년 6월 고발한 사건을 3년 반 동안 가지고 있으면서 공소시효 완성 하루 전에 33명 중 2명만 기소하고 나머지 31명에 대해서는 수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삼성이 아닌 다른 기업이었어도 검찰이 3년 반 동안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고 기소하지 않고 가지고 있었을까.
재벌이나 살아있는 권력에는 약하고 죽은 권력이나 약자에게는 칼을 휘두르며 수사와 기소권을 남용하는 검찰을 보면 아프리카 최후진국에서 사는 것 같고 너무나 한심스럽다.
검찰은 ‘국민의 눈으로 정의를 판단하고 정도를 걷는 국민의 검찰이 되겠다’는 대검 홈페이지의 문구를 되새겨 보라.
민경한 변호사
민경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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