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대통령은 총리, 장차관 등 행정부의 주요 자리 및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감사원장의 임명권을 갖고, 소속 정당의 국회의원 공천권을 사실상 행사한다. ‘용상’(龍床)은 딱 하나뿐이기에 여야의 ‘잠룡’들은 사생결단으로 격돌한다. 이 과정에서 색깔공세, 인신비방, 지역감정 동원은 기본이다. 새 대통령이 선출되면 그를 위한 ‘용비어천가’가 울려 퍼진다. 새 권력은 옛 권력의 영향력을 지우기 위한 ‘부관참시’ 의식에 착수한다. 물러간 대통령에게는 ‘육시’(戮屍)나 ‘팽형’(烹刑)이 가해지고, 공직자 임기제고 뭐고 간에 옛 권력 시기에 임명된 사람은 쫓겨난다. 이와 동시에 집권세력 내부에는 ‘자리’와 ‘이권’을 더 많이, 더 빨리 차지하기 위하여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며, 대통령의 친인척이나 측근에 대해서는 집요한 로비가 벌어진다. 이 과정에서 불법과 편법이 동원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막강한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만큼 임기 동안 발생하는 모든 문제는 대통령 탓이 되며, 반대 정파의 칼날은 언제나 대통령을 향한다. 늦어도 임기 3년차가 되면 권력 누수가 표면화되고 ‘어좌’(御座)는 흔들리며 집권당 내에서 현직 대통령과의 차별화 작업이 시작된다. 그 결과 다음 선거전까지 국정은 표류한다.
이상은 ‘제왕적 대통령제’로 불리는 한국 정치권력 구조에 대한 냉소적 묘사이다. 승자독식의 권력구조가 유지되는 한 대화와 타협의 정치는 실종되고 ‘증오의 정치’가 재생산될 것이고, 무한권력을 향한 무한투쟁이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변고에는 이런 구조적 배경이 깔려 있다.
이제 이런 권력구조를 바꿀 때가 되었다. 헌법을 개정해 권력 독점에서 권력 분점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먼저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해야 한다. 특히 국무총리의 국무위원 제청권과 해임건의권을 규정한 현행 헌법 조항을 존중하는 국정운영 또는 이 권한을 더 분명하게 구체화하는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 이는 정치세력간의 연합을 촉진하기 위함이다. 즉, 보수연합정부, 진보연합정부, 나아가 진보·보수연합정부(=프랑스식 ‘좌우동거정부’)의 구성이 가능하도록 제도적 틀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틀이 마련된다면 각 정치세력이 대통령·총리·국무위원 등 국무회의의 예비 구성원을 짜며 연합 권력을 모색할 것이고, 집권하면 정권을 공동 운영하고 공동 책임을 질 것이다. 근래 논의되고 있는 대통령 중임제는 이러한 대통령 권한의 분산과 결부되지 않는다면 의미가 별로 없다.
둘째, 사법부 독립과 헌법재판의 중요성 등을 생각할 때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 임명권은 대통령의 권한에서 삭제함이 바람직하다. 감사원의 경우 행정기관과 행정부 공무원에 대한 직무감찰 권한만 남기고, 국가 세입·세출의 결산, 국가 및 법률이 정한 단체에 대한 회계감사 권한은 국회로 이관할 필요가 있다.
셋째, 현재 운영되고 있는 비례대표제가 부분적으로 가미된 소선거구제를 바꿔야 한다. 지역구 선거에서는 단 1명의 승자만 있기에 선거가 치열해지고 비용이 많이 들며 다량의 ‘사표’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지역주의에 기초한 선거문화를 고착시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생각건대, 지역구 의원 수를 대폭 줄이고 정당투표로 할당되는 비례대표 의원 수를 대폭 늘리거나, 아예 선거구제를 소선거구제에서 중선거구제로 바꾸는 변화가 필요하다. 이는 이념과 정책에 따른 정당정치를 안착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정치적 민주주의는 대표자의 직선만이 아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고치고 권력분점을 제도화하고 사회통합을 촉진하는 노력이 여의도 안팎에서 일어나야 할 시간이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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