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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계의창] 독일 역사는 다시 써야 하는가 / 홀거 하이데

등록 2009-06-15 20:31

홀거 하이데  독일 사회경제행위연구소 소장
홀거 하이데 독일 사회경제행위연구소 소장
1967년 6월, 서독에서 한 대학생이 사복 차림의 공안당국 요원인 카를하인츠 쿠라스의 총에 맞아 숨졌다. 서독 정부가 미국의 지원을 받는 이란의 폭압적인 무하마드 리자 샤 팔레비 정권을 환영한 것에 대한 항의시위가 정점에 이른 때였다. 도이체 오페라하우스 앞에서 시작된 평화시위는 쇠파이프로 무장한 팔레비 왕조 지지 시위대의 공격을 받고 폭동경찰이 계획적으로 개입하면서 폭력충돌 사태로 바뀌었다. 항의시위대는 폭력적으로 진압됐고, 피신한 시위자들까지 추격을 받았다.

쿠라스는 시위대 사냥꾼 중 한 명이었다. 이후 조사 과정에서 쿠라스와 경찰의 불법 혐의를 입증할 중요한 증언들은 검찰에 의해 (유죄 입증에) 부적합한 것으로 분류되거나 아예 감춰졌다. 쿠라스는 두 차례나 무죄 방면됐다. “총기 발사가 우발적 사고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대학생의 죽음은 대규모 학생시위와 광범위한 사회운동을 촉발했다. 뒷날 ‘68운동’으로 불리게 된 일련의 운동은 나치 독재 이후 독일 사회 민주화 진척의 뚜렷한 이정표가 됐다.

최근 독일 역사학계는 옛 동독 정보국 문서에 대한 연구 결과물을 내놓았다. 문서에서 쿠라스는 서독의 관료였던 동시에 동독의 집권 사회주의통합당 당원이자 동독 비밀경찰 슈타지의 고위 간부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사실은 독일 정가에 엄청난 충격을 던졌다. 경찰에 우호적인 각급 법원의 판결을 포함한 모든 것들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것은 시사주간지 <슈피겔>의 주장처럼 독일연방공화국 역사의 핵심 부분을 다시 써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슈피겔은 “68세대가 자신들의 저항을 정당화해주는 중요한 주춧돌을 잃었다”고 썼다. 한 대학생의 죽음은 즉각 저항운동의 주축이었던 젊은이들을 다시 불러모았다. 운동의 급진화와 이에 따른 일부 폭력적 행위들은 한 대학생을 죽음으로 몰아간 경찰의 폭력성을 지적함으로써 정당화됐다. 심지어 적군파의 출현을 정당화하는 주장에서도 대학생 피살 사건이 언급됐다. 또다른 테러조직인 ‘6월2일 운동’은 아예 사건이 일어난 날짜를 조직명으로 삼았다.

그러나 이후 유발된 일련의 사태들과 68운동의 진정한 대의를 혼동해선 안 된다. 그 운동은 파시스트와 제2차 세계대전 세대가 낳은 아들딸들이 용인할 수 없는 전체주의 사회의 망령에 맞선 저항이었다. 대학생 피살 사건은 이미 수많은 사람들의 시위가 퍼져가고 있는 와중에 일어났다. 이미 정치적 각성이 있었으며, 한 개인의 책임으로 국한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젊은 저항세대가 부모 세대의 전쟁 트라우마를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했음을 고백해야 한다. 개개인, 그리고 집단적 행동의 직접적인 동기와 열망이 그 정도의 격분을 필요로 한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그러한 격분이 순교자를 필요로 했다.

강인함으로 비치는 것이 실은 유약함일 수도 있다. 희생자의 행동은 그것이 집단적으로 공유될 때 종종 일탈행위로 변질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일탈행동을 굳이 정당화할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이유를 따져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희생자가 되면 스스로 자기방어의 정당성을 부여한다.

순교자와 희생자들에 대한 이런 태도를 근거로 저항운동을 하는 것은 무책임한 테러리즘을 낳을 위험성이 있다. 이런 행동은 우리가 이미 극복했다고 생각하는 망령들을 똑같이 재생산하게 된다. 다행히 우리는 오늘날 많은 새로운 사회운동에서 이런 악순환을 끊을 고무적인 사례들을 경험할 수 있다.


홀거 하이데 독일 사회경제행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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