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종현 우신고 교사
현 정부의 ‘고교다양화300 프로젝트’에 따라 서울에서 ‘자율형 사립학교’ 설립 신청을 받은 결과 33군데 학교가 신청하였다. 계획대로라면 7월 중순 이내에 서울에서만 25곳을 지정하게 되고, 2011년이면 전국적으로 100곳의 자율형 사립고를 설립할 예정이다. 이는 우리나라 중등교육의 근간을 뒤흔드는 정책으로서, 정권 출범 이후 내놓은 소수 특권 교육정책의 연장이자 그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와 서울시 교육청은 자율형 사립학교 설립의 명분으로 ‘공교육의 다양성과 경쟁을 통한 사교육 억제’, ‘사학의 자율성 보장’,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권 보장’ 등을 말하고 있다.
첫째, 공교육의 다양화와 경쟁을 통해 사교육을 억제하겠다는 것은, 사교육의 주된 원인이 승자독식의 경쟁 시스템에 있다는 명백한 사실을 애써 외면하려는 주장이다. 이미 입시 명문고가 되어버린 외고, 과학고, 국제고, 개방형 자율학교, 그리고 시범 운영중인 6개의 자립형 사립고까지 합하면 전국의 60여 학교에 4만여명에 가까운 학생들이 피 흘리는 경쟁을 하고 있다. 여기에 정부의 계획대로 고교다양화300 프로젝트가 실현된다면 전체 일반계고의 20%가 서열화된 입시 명문고를 표방하며 경쟁할 것이다. 그러한 현실을 조성하면서 사교육이 억제될 것을 기대한다는 정부의 주장을 정말 선의로 이해해야 하는가? 지나친 경쟁 시스템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교육을 경쟁 강화를 통해 억제하겠다는 것은 기름으로 불을 끄겠다는 격이다.
둘째, 이번에 자사고를 신청한 33군데 학교 중 25곳은 작년까지 재단전입금 비율이 5%에도 미치지 못했다. 또한 그중 12곳은 최소한의 법정 재단전입금조차 내지 않았다. 설사 앞으로 5%를 채운다고 하더라도 학교 운영 경비의 95%를 학부모의 주머니에 의존하면서 학교의 자율성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자사고를 신청한 대부분의 학교에선 현재 교육과정에 국·영·수 과목을 집중적으로 배치하고 구색 맞추기로 다른 과목들을 끼워 넣는 정도로 교육과정을 편성하고 있는 실정이다. 즉, 그들의 자율성이 의미하는 것이란 맞춤형 입시 교육을 일컫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율형 사립고의 응시 자격을 중학교 내신 성적 기준 50% 이상에서 제한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은 드러내놓고 입시 경쟁만을 부추기는 꼴이다.
셋째, 정부는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권을 이야기한다. 정부의 주장이 정당하려면 그 선택의 기회가 소득과 계층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균등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지금 시행되는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지정·운영 계획에 의하면 납입금을 학교장이 자율로 결정하도록 하였다. 기존의 시범 운영중인 자립형 사립고의 납입금 한계인 일반계고의 3배 조건조차 없앤 것이다. 3배만 받는다 하더라도 납입금에 각종 특별 수업료, 기숙사비 등을 합하면 연간 1000만원을 쉽게 넘는다. 과연 국민들 중에 이를 감당할 계층이 몇 %나 될까?
이쯤 되면 정부의 그럴듯한 명분에도 불구하고 자율형 사립학교가 어떤 계층을 위한 교육정책인지 불을 보듯 뻔하다. 부자 감세를 통해 중등교육의 부담을 학부모에게 떠넘기고, 기득권 계층의 ‘사다리 걷어차기’를 합법적으로 보장하는 정책일 뿐이다. 지금 존재하는 외고, 과학고, 자사고조차도 이미 특정 계층이 아니고서는 접근의 기회조차 어렵다는 사실을 여러 통계 자료가 증명하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등록금 1000만원의 자율형 사립고까지 우후죽순으로 난립한다면 우리 사회는 교육을 통한 사회의 계층 이동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새로운 신분제 사회가 될 것이다.
권종현 우신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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