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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반성의 있고 없음’에 대해 / 김종구

등록 2009-06-22 21:01

김종구  논설위원
김종구 논설위원
이런 글을 애초 쓰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한번 쓴 글에 대해 다시 이러쿵저러쿵 사족을 붙이기 싫어서다. 그런데 최근 다른 신문이 필자의 이름까지 직접 거명하며 <한겨레>를 공격하고 나섰으니 가만히 있기도 어렵게 됐다. 단순히 개인 차원의 문제를 떠나 몸담고 있는 신문사 조직에 누를 끼치게 된 셈이기 때문이다.

<동아일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한 언론 보도 문제를 짚은 지난 6일치 사설 ‘석고대죄에서 정치적 타살로 돌변한 좌파매체’에서, 한겨레와 경향에 대해 “정말 ‘당신들이나 잘하라’는 말을 들려주고 싶다”고 빈정거렸다. 그러면서 필자의 칼럼 ‘비굴이냐 고통이냐’를 예로 들었다. 이 글이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을 촉구한 게 아니냐는 일부 누리꾼들의 분노에 슬며시 편승한 것이다. 동아일보 고위 관계자는 비공식적으로 “자살방조 논설위원”이라는 말까지 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눈물짓고 가슴 아파하는 사람들로서는 칼럼에 나오는 ‘사즉생’ ‘고통’ ‘마지막 승부수’ 등의 표현에 울컥한 나머지 곡해해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글쓰기가 본업인 기자들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너무 속이 들여다보인다. ‘사즉생’이라는 말이 ‘삶과 죽음은 한가지다’ ‘죽는 게 영원히 사는 것이다’라는 따위의 뜻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모를 기자는 없다. 그 말의 쓰임새는 단순하고도 명쾌하다. ‘죽기를 각오하고 맞서면 오히려 살길이 생긴다’는 의미로 분발과 노력을 촉구할 때 관용적으로 쓰는 표현이다. ‘고통’이란 말 역시, 죽음 앞에서는 ‘고통을 내려놓는다’고 말하지 ‘고통의 길을 걸어가라’고 하지 않는다.

‘마지막 승부수’도 마찬가지다. 이 표현은 홈페이지 폐쇄 등 노 전 대통령 쪽의 대응에 조·중·동 등이 여러 차례 “검찰 수사를 앞둔 마지막 승부수” 운운한 것을 염두에 둔 패러디일 뿐이다. 모든 것을 떠나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승부의 차원에서 바라보는 것은 발상 자체가 너무 천박하다. 앞뒤 사정이 이런데도 동아일보는 글의 전체 메시지를 왜곡해 반대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언론에 여러가지 고민거리를 던져주었다. 그것은 딱히 외부의 거센 비판 때문만은 아니다. 이번 기회에 좀더 근원적으로 성찰할 문제들과 맞닥뜨렸다는 뜻이다. 기사쓰기의 관행과 메커니즘의 변화, 비리 추적과 인권 보호의 경계선 등 고민해야 할 문제들이 수없이 얽히고설켜 있다. 한겨레도, 그동안 여러 차례 강조했지만, 이런 현실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공개적으로 반성도 했다. 위에 예로 든 칼럼도 개인적으로는 회한이 없는 게 아니다. 문제는 마음가짐이다. ‘우리가 잘못한 게 뭐 있느냐’며 종주먹을 들이대는 한 변화와 개선은 기대할 수 없다. 거기에 의도적인 왜곡까지 더해지면 절망적이다.

최근 동아일보 황호택 논설실장은 “1987년 6월 민주항쟁 때 한겨레는 태어나지도 않았고 경향은 관제 언론을 하고 있었다”며 “민주주의를 독점한 것처럼 행세”하지 말라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6월항쟁 당시 ‘동아일보의 역할’에 대한 자부심을 한껏 과시했다. 바로 그 지점이다. 6월항쟁 당시 동아일보의 분투와 노고는 충분히 인정할 만하다. 하지만 한때의 영광이 영원한 영광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민주화에 기여한 훈장이 세세연년 빛나지도 않는다. 그것은 한겨레나 경향을 포함해 모든 신문이 마찬가지다. 어제의 영광에 안주하고 있으면 곧바로 내일에는 냉소와 비판의 화살이 날아드는 게 세상사 이치다. 최소한 필자를 포함해 한겨레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그 대목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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