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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피디수첩과 검찰폭력 / 김승환

등록 2009-06-23 19:38

김승환  한국헌법학회 회장, 전북대 교수
김승환 한국헌법학회 회장, 전북대 교수
헌법의 기본 원칙인 법치국가 원칙은 국가권력의 행사에 대하여 합법성과 정당성을 갖출 것을 요구한다. 이 요건을 갖추지 못하는 경우 국가권력의 탈을 쓴 국가폭력이라는 성격 규정에 직면한다.

<문화방송>(MBC) ‘피디수첩’ 사건에서 검찰권은 법치국가의 한계를 넘어도 너무 넘어 버렸다. 명예훼손죄는 일정한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에 대한 사회적 평판을 저하시키는 행위를 처벌하는 범죄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사실은 진실한 것이건 허위의 것이건 묻지 않는다. 다만 양형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방송의 특정 프로그램이 정부 정책의 올바름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 일정한 사실들을 전달하고 그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경우, 그것이 주무장관이나 해당 정책을 담당하는 고위 공무원의 명예를 훼손한다는 이유를 걸어 명예훼손죄의 죄책을 물을 수 있는가? 만약 그렇다고 답한다면 그것은 명예훼손죄의 법리를 오해하면서 동시에 민주주의 체제하에서의 언론의 기능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명예훼손죄는 정부 또는 국가의 명예를 보호하는 범죄가 아니라, 자연인의 명예를 보호 법익으로 한다. 장관은 국가권력과 구분되어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념필연적으로 국가권력 속에 내포되어 있다. 국가권력이나 정부의 정책에 대한 사실보도와 평가가 설사 장관의 명예에 대한 사회적 평가의 훼손을 수반하더라도, 그것이 국가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언론의 기능을 정지시킬 수는 없다. 그렇지 않으면 국가권력을 견제하고 올바른 여론을 형성해야 하는 언론의 존재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보도매체가 어린아이들이 먹는 과자류에 인체유해물질이 들어 있을 수 있다는 정보들을 전달하고 그에 대한 평가를 한 후, 해당 업체의 매출이 줄어들었다고 해서 그런 행위를 위계 또는 위력으로 업무를 방해한 것으로 보아 형법상의 업무방해죄(제314조)로 처벌할 수 있는가? 만약 그렇게 된다면 언론은 백 퍼센트 진실한 사실이 아닌 이상, 업체의 이익에 반하는 보도는 일절 해서는 안 된다는 어처구니없는 논리가 성립할 것이다.

나아가 해당 프로그램의 작가가 사적으로 주고받은, 범죄 혐의와 직접 관련이 없는 이메일의 내용을 범죄의 증거라고 주장하면서 공표할 수 있는가? 검찰의 이러한 행위는 헌법상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것이고, 통신비밀보호법 제11조가 규정하는 비밀준수 의무를 위반한 범죄행위가 아닌가?

하나 더 지적하기로 하자. 명예훼손죄는 피해자의 명시적 의사에 반하여 처벌할 수 없는 범죄, 즉 반의사불벌죄이다. 이 정도의 범죄 혐의로 방송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기도한 검찰의 의도는 무엇이라고 추단해야 하는가?

우리나라에서 기소독점주의의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아무리 악질적이고 파렴치한 범죄라 하더라도 검찰이 봐주면 그만이다.(전두환·노태우 등에 의한 12·12와 5·18 군사반란과 내란의 혐의에 대하여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전대미문의 궤변을 농하였다.) 그러나 여덟 명의 숭고한 목숨을 앗아간 인혁당 사건처럼, 비록 죄가 없다 하더라도 검찰이 작심하면 엄청난 참극도 대수롭지 않게 자행될 수 있다.

기소독점주의를 통한 검찰권 행사의 병폐를 도려내기 위해 2008년 1월1일부터 형사소송법은 재정신청의 대상 범죄를 모든 고소사건으로 확대하였다.(제250조) 따라서 이제 검찰권 행사의 피해자는, 검찰폭력이 헌법상의 기본권을 침해하거나 형법상의 범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는 경우 해당 검사를 고소하며, 무혐의 처분이 내려지는 경우 법원에 재정신청을 해서 유죄판결을 끌어내는 치열한 법리투쟁을 전개해 나가야 한다.

김승환 한국헌법학회 회장, 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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