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회승 산업팀 기자
한겨레프리즘
유럽에선 요즘 ‘보스내핑’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상사(boss)와 납치(kidnapping)의 합성어인데, 경기침체 이후 생겨난 조어다. 노동자들이 일방적인 구조조정에 반발해 경영진을 감금하는 사태가 종종 빚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노동자들은 외국계 기업들이 공장 폐쇄나 감원에 나서자 회사 대표와 경영진을 감금하고 노사 협상을 제안했다. 스코틀랜드에선 부실경영으로 물러난 은행장이 거액의 연금을 받게 되자 시민들이 은행장 자택에 몰려가 돌을 던지고 승용차를 부쉈다.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무관용 정책’이 뿌리내린 이른바 ‘법치 선진국’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경영진 감금 행위에 대한 현지 여론조사를 보면, ‘정당하다’는 응답이 과반수에 이르는 경우가 훨씬 많다. 법원은 경영진 감금에 가담한 노동자들을 재판하면서, 동시에 사쪽에는 ‘성실교섭 의무’를 부과했다. 구속된 노동자는 없었다. 처벌만으로 해소되기 힘든 사회적 갈등에 대처하는 성숙함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배제의 정치’가 사회적 갈등과 비용을 키운다는 건 경제학의 상식이다. 갈등이 첨예할수록 정책 추진은 더 지연된다. 중도우파를 표방한 이탈리아 베를루스코니 정부는 일방적으로 노동유연화 정책을 추진했다. 노동법 개정권을 정부에 위임하고 파업권을 제한했으며 해고자 복직에 제한을 뒀다. 뒤늦게 관변 노동단체들과 사회적 협약을 맺는 모양새를 갖췄지만 갈등은 가라앉지 않았다. 유럽국 가운데 이탈리아의 경제성장률은 꼴찌 수준이며, 재정적자는 최대 규모다.
이명박 정부는 선거캠프 시절부터 영국 대처 정부의 ‘두 국민 전략’과 미국 부시 정부의 ‘오너십 사회’ 정책을 거의 그대로 벤치마킹했다. 쉽게 말해 보수와 진보, 가진 자와 없는 자를 철저히 분리해 ‘내 편’ 중심으로 국정을 꾸리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역시 ‘법치’와 ‘실용’이라는 프레임으로 권위적 통치와 배제의 정치를 구현해왔다. 최소한 ‘30% 지지세력’은 확고히 유지할 수 있다는 정치적 셈법도 깔려 있다. 하지만 이는 원조격인 유럽에서도 이미 용도가 폐기된 정치 전략이다. 영국 보수당은 ‘현대 보수주의’를 내걸고 핵심 어젠다를 환경·건강·여성 등 ‘삶의 질’로 바꾼 지 오래다. 사적 자유, 경제 우선주의만 내걸어서는 정치적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사회통합을 위한 국정 수습책으로 ‘중도실용’을 표방했다. 우리 사회에서 갈등 비용이 가장 큰 사교육 대책을 앞세워 이른바 ‘근원적 처방’을 내놓은 것이다. 문제는 내실과 진정성, 그리고 일관성이다. 얼마 전 경기도 한나라당 교육위원들이 초등학교 무상급식 예산을 절반이나 깎는 일이 벌어졌다. 진보 성향 교육감을 길들이겠다며 소외계층 아이들 8만여명의 점심을 빼앗은 것이다. 경찰과 서울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거리 분향소를 극우단체 뒤에 숨어 교묘히 철거했다. 정부는 4대강 사업 홍보를 위해 ‘대한늬우스’를 부활했고, 쌍용차와 <문화방송> 노동자들은 파국의 충돌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통합의 핵심은 소통과 협치(거버넌스)다. 통합의 대상을 여전히 배제한 채 그 진정성을 기대하긴 힘들다. “이명박 대통령이 압도적 승리는 했지만 압도적 지지를 받은 건 아닙니다. 평균적인 상식에 맞으면 다수의 국민은 이해합니다. 지금은 국민이 주권자입니다. 얄팍한 술책은 통하지도 용납하지도 않습니다.” 정부·여당이 촛불시위 수습책을 골몰하던 지난해 이맘때, 보수 진영의 ‘책사’로 통하는 윤여준 전 의원이 한 말이다.
김회승 산업팀 기자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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