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영선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기고
모든 동물이 그들 나름대로 의사소통을 하겠지만, 말은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런데 요즘 “말을 이렇게 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든다. 말의 왜곡 정도가 아니라, 아예 사실을 배반하는 말들이 흘러넘치니 말이다. 사실과 상관없는 말이 말의 구실을 하겠는가? 말이 깨진 사회도 온전한 인간사회라고는 할 수 없다.
‘4대강 살리기’라는 말이 있다. 지난해 촛불의 위력이 노도와 같을 때,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이 반대한다면” 대운하를 추진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나서, 반년 만에 정부가 발표한 국가적 대사업이다. 대운하추진팀이 4대강 살리기 추진본부로 간판만 바꿔 달았다고 한다. 전에 대운하를 위해 만들려던 거의 같은 자리에 보들을 쌓고, 배가 다닐 만치 강바닥을 긁어내는 게 사업의 골자인데, 대운하와는 상관이 없단다.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게 참 놀랍다.
최근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커밍아웃을 했다. 경인운하가 대운하의 1단계 사업이며, 미리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는 아이디어를 자신이 냈노라고 털어놓은 것이다. 그나마 사실을 털어놓았다고 반가워해야 할지, 대운하를 기정사실화하기 위한 작전에 다시 한번 놀라야 할지 모르겠다.
‘강 살리기’라는 작명 또한 기가 막힌다. 강바닥 파내고, 흐르는 강물 막는 보 쌓고, 강변 개발하는 토목공사에 애당초 강 건강에 대한 관심은 보이지 않는데, 거기다 ‘강 살리기’라는 이름을 붙였다. 어렵게 자생력을 찾아가는 강들을 한꺼번에 죽일 엄청난 계획을 세우면서 말이다. ‘강 살리기’에 반대하면 강을 죽이려 한다는 누명을 쓸 판이다.
오래전 독일에 취재를 가서 라인강을 살려낸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난다. ‘라인강의 기적’을 만들어내느라 깊은 병이 든 라인강을 되살리기 위해 독일은 오염원을 차단하고 정화장치를 하는 등 무척이나 엄격한 환경정책을 실시했다. 그런데 할 수 있는 기술적인 방법을 다 동원해도 일정 부분 개선이 된 다음에는 더 좋아지지 않더라고 했다. 그들이 찾아낸 해답은 무엇이었을까? 콘크리트 제방을 뜯어내고 강을 자연상태로 되돌린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맑은 물에 뭇 생물이 되돌아온 강을 만든 것이다.
공사비용이 첫 발표 때 14조라더니 반년 만에 22조로 늘어났다. 이 돈으로 얼마나 많은 다른 유용한 일들을 할 수 있는가는 잠시 덮어두자. 이 엄청난 공사를 환경영향평가라는 형식조차 제대로 안 밟고 올해 10월에 시작해 2012년에 완공한단다. 이 땅의 젖줄을 온통 뒤집어엎는 공사를 그렇게 졸속으로? 무엇을, 누구를 위하여?
멀쩡한 대낮에 벌어지는 일이라고 믿기가 어렵다. 사기꾼이나 투기업자의 사기행각이라면 또 모르겠다.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벌이는 일이라고는 차마 믿기 어렵다.
우리나라 공무원의 수준이 이 정도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이 어려운 시기에 최선을 다해 아이디어를 짜내도 모자랄 판에, 엘리트 공무원들이 말이 안 되는 정책들을 만들어내고, 시행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는 그 엄청난 낭비가 가슴 아프다.
27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4개 종단과 정당, 그리고 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운하백지화국민행동이 ‘그대로 흐르게 하라’는 제목으로 4대강 사업 저지 범국민대회를 연다. 우리의 강을 섣부른 파괴로부터 구하자는 외침일 뿐 아니라, 말이 살아 있는, 제정신 박힌 사회에 살고 싶다는 몸부림이기도 하다. 서울시와 종로구청이 다 불허 방침을 밝혔다지만, 이 외침과 몸부림은 어떻게든 어디서든 터져 나오고 말 것이다. 지영선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27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4개 종단과 정당, 그리고 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운하백지화국민행동이 ‘그대로 흐르게 하라’는 제목으로 4대강 사업 저지 범국민대회를 연다. 우리의 강을 섣부른 파괴로부터 구하자는 외침일 뿐 아니라, 말이 살아 있는, 제정신 박힌 사회에 살고 싶다는 몸부림이기도 하다. 서울시와 종로구청이 다 불허 방침을 밝혔다지만, 이 외침과 몸부림은 어떻게든 어디서든 터져 나오고 말 것이다. 지영선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