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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작심 두 달 / 여현호

등록 2009-06-29 20:47

여현호  논설위원
여현호 논설위원
4·29 재보궐선거가 끝난 지 꼭 두 달이다. 일주일만 뉴스를 안 봐도 다른 세상에 온 듯 멀미하는 게 한국 사회라지만, 그때와 지금의 분위기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0 대 5로 참패한 그때의 한나라당은 적어도 겉으로나마 석고대죄하는 분위기였다. 너도나도 쇄신을 말했고, 비판도 거침없었다. 이명박 정부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을 대놓고 탓하거나, 실명까지 거론하며 당·정·청의 대대적 인적 개편을 주장하는 말들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그런 기세로 출범했던 한나라당 쇄신위원회는 이제 몸을 사린다. 쇄신안을 거의 마련하고서도 당내 분란을 조장할 수 있다며 보고와 공개를 그제 또 미뤘다. 쇄신위는 6월 중순에도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핑계로 이미 그리한 바 있다. 쇄신안 내용도 흐릿해졌다고 한다. 이것저것 요구와 주장은 있지만 누구를 바꿔야 한다거나 언제 뭘 어떻게 해야 한다는 따위 구체적인 내용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쇄신위 회의에서 나왔다는 이유와 사정을 들어보면 더 딱하다. 인적 쇄신을 주장하려 해도 곧 있을 것이라는 개각 등 인사 개편의 폭과 방향을 짐작하기 어렵고, 전당대회 시기를 섣불리 정했다간 자칫 청와대의 정국 구상과 어긋나게 될까 걱정된다는 것이다. 우물쭈물 제대로 말도 못하면서 눈치만 보는 꼴이다. “국민이 가장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문제를 성역 없이 다루겠다”던 출범 때 포부와 달리 국민 대신 대통령만 좇는 모습이다.

쇄신위의 좌초가 쇄신위원들의 소신이나 능력이 모자란 탓만은 아닐 것이다. 들어야 할 사람이 듣지 않으려 한다면 말하기도 어려운 법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6월 초와 6월 중순 등 몇 차례에 걸쳐 국면전환용 인사 개편은 않겠다는 등 쇄신론에 대놓고 거부반응을 보였다. 여론이야 어떻든 현실의 권력이 집중된 현직 대통령이 그쯤 말했다면 무슨 뜻인지 알아듣는 게 여당의 오랜 생리인 터다.

그 결과가 옛 한나라당으로의 복귀다. 국회 단독소집, 법안 직권상정 따위 한나라당이 어제오늘 보이는 모습은 강행과 독주를 서슴지 않았던 몇 달 전과 한 치 다를 바 없다. 미디어법은 내용을 잘 모르는 일반 국민들의 여론을 들을 일이 아니라며 국민을 무시하는 말을 거리낌 없이 하는 오만도 그대로다. 국민이 이명박 정부에 바라는 것은 일방통행이 아니라 소통과 협치라는 내부의 진단이 있었는데도, 정작 행동은 정반대다. 단기 기억상실증이 아니라면 두 달 전의 아픔과 반성을 어떻게 이렇게까지 까맣게 잊을 수 있는가.

지금대로라면 꼭 석 달 뒤 10월 재보선 때도 똑같은 행태가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다. 그때 한나라당에 주어질 쇄신과 재기의 기회는 지금보다 훨씬 좁아질 것이다. 그로 인한 격동과 변화는 더 거셀 수밖에 없다.

사람의 노화는 여러 요인이 얽혀 일어난다고 한다. 노화의 주요 원인에 대한 여러 가설 가운데 유전자적 오류가 누적돼 인체가 자기 치유 능력을 상실한 탓에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설명이 있다. 정당이나 조직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잘못을 발견하고 개선 방법을 찾아내는 자기 치유와 교정의 능력이 없는 조직이 오래갈 리 없다. 하물며 여론의 요구를 법안이나 정책으로 반영하는 게 구실인 정당이 내부의 문제제기와 국민의 뜻을 거듭 무시한다면 그 결과는 뻔하다.

지금 한나라당에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뭉개고 버티면서 현상을 유지하려 하다간 더한 낭패를 당할 수 있다. 대신 나서서 걱정해줄 것은 아니지만, 그런 일은 정당정치의 후퇴로 이어질 수 있다. 박근혜든 정몽준, 이재오든 가용 자원을 모두 동원해서라도 변화를 시도하는 게 낫지 않겠는가.


여현호 논설위원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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