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진 대구가톨릭대 언론광고학부 교수
대한민국의 2009년은 지난 수십년 동안 독재와 권위주의에 맞서 지켜온 민주언론을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징후들이 급격하게 돌출하면서 크게 술렁이고 있다. 그런데 그 돌출행동의 주체가 다름아닌 국가공권력의 핵심 세력이라 할 수 있는 청와대·여당·검찰이라는 점에서 깊은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검찰은 <문화방송> ‘피디수첩’ 제작진을 이런저런 방식으로 탄압수사하고, 심지어 제작진의 개인 이메일까지 파헤치면서 사생활을 침해하는 등 도저히 선진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나라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파렴치한 행동을 저지르고 말았다.
피디수첩에 대한 검찰의 수사발표가 공표되자 때를 기다린 듯 청와대는 이동관 대변인의 브리핑을 통해 문화방송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 사퇴라는 막말에 가까운 수준의 발언으로 불난 민주주의에 기름을 쏟아붓는 과격함을 드러냈다. ‘충격’ ‘경악’ ‘왜곡’ ‘조작’ ‘불순’ ‘진실 바꿔치기’ 등 브리핑이 담고 있는 표현은 과거 공안정국의 청와대 대변인 입에서나 나올 만한 것들이었다. 청와대 대변인의 입이 곧 대통령의 입이나 다름없다고 볼 때 이명박 대통령의 언론을 대하는 수준이 과거 독재시절의 그것은 아닌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한나라당도 마치 미리 짜놓은 각본대로 움직이기나 하듯 성명을 통해 일제히 청와대의 막장 브리핑에 손뼉을 치면서 거의 협박 수준으로 피디수첩의 폐지를 주장하고 나섰다. 5공 시절에나 가능했던 언론사 경영진에 대한 통제와 협박을 선진 민주주의를 추구해야 할 오늘날 또다시 겪어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비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일부 보수언론들은 이를 앞뒤 가리지 않고 받아쓰기 저널리즘에만 충실했다. 진실 추구의 사명이 무색하리만치 단순 사실의 조각들만을 맥락 없이 나열하는 보도로 국민을 오도할 수 있는 우를 범하는 것은 아닌지 개탄스럽다.
정략적으로 쏟아내놓는 정부 여당의 입장은 언론보도를 통해 확대재생산되고 이는 결국 미디어 악법 통과라는 절차를 밟으려는 의도로 비치고 있다. 게다가 문화방송 사장을 임명하는 방송문화진흥회의 이사진 임기 만료가 8월로 다가옴에 따라 그동안 정부 정책에 비판적 보도로 눈엣가시처럼 여겨졌던 문화방송을 통제할 친여권 인사가 방문진 이사장으로 임명될 것이라는 말도 흘러나오고 있다. 언론장악을 기도하는 또 하나의 낙하산이 내려올 조짐이다. 만일 그런 우려가 현실이 된다면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독재국가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은 ‘피디수첩 문제가 외국에서 일어났다면 경영진이 사퇴하고 사과방송을 해야 할 사안’이라고 했지만, 정작 민주주의 언론선진국 치고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적 보도로 정부 여당은 물론 검찰이라는 국가공권력까지 동원돼 비판언론이 이토록 뭇매를 맞는 사례는 들어보질 못했다. 오히려 언론선진국일수록 정부 비판의 강도가 높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언론은 본래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자세로 늘 긴장 관계를 견지해야 하고 또 그것이 적절하다는 것을 우리는 서구 선진언론과 민주주의 국가들의 경험에서 학습했다. 신문방송 겸영으로 수많은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는 애초의 주장이 허구로 드러났고, 재벌 대기업에 방송 진출을 허용할 경우 언론의 자유와 비판 기능에 심각한 위기가 온다고 국민 대다수는 믿고 있다. 정부 비판적 방송에 재갈을 물리려는 기도가 드러나는 이 형국에 이제라도 청와대와 여당은 망국적 언론장악의 뜻을 접고 진정 민의가 무엇인지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최경진 대구가톨릭대 언론광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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