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신 고려대 법대 교수
영화 〈젊은이의 양지〉에서 주인공(몽고메리 클리프트 분)은 이미 애인이 있는 상황에서 새 애인(엘리자베스 테일러 분)과 사랑에 빠지자, 옛 애인에 대한 책임감 속에서 갈등하다가 옛 애인에 대한 살인을 ‘상상’만 하고 실행에 옮기지 못하였다. 그러던 중 그 애인이 사고로 죽자 그는 살인죄로 기소되어 사형당한다. 영화감독은 ‘죽도록 (또는 죽이도록) 사랑한다’는 젊은이의 순수함과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의 편견 사이의 충돌에 초점을 맞춘다.
‘피디수첩’의 광우병 보도에 대한 검찰 발표에서 제작진의 이메일과 관련된 문제점은, 검찰이 정부 관리에 대한 제작진의 비판적인 견해를 그 관리에게 범죄(명예훼손)를 저지를 의도로 간주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에 공개된 메일들이 보여준 것은 단지 제작진이 특정한 정부정책에 결연한 반대 의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이 입장을 보도 내용을 조작하고 왜곡할 의도, 즉 명예훼손을 범할 의도로 등치시키는 것은 정부 비판적 견해에 대한 전면적 탄압이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서적을 많이 읽고 있는 사람에게 내란 의도를 뒤집어씌우는 것과 같다. 이메일 공개 여부를 떠나 검찰의 유죄 논리 자체에 심대한 문제가 있는 것이다. 통계적으로, 진보적인 사람이 불법시위에 참여할 확률이 보수적인 사람보다 더 높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피의자의 진보성을 보여주는 기록을 불법시위 참여 의도성의 증거로 제시하는 것은 사상탄압이며 헌법적으로 금지된다.
통신비밀이든 압수수색된 이메일이든 그 공개를 절대적으로 금할 수는 없다. 공적인 사안에 대한 프라이버시권은 국민의 알 권리를 넘어서지 못한다. 범죄수사는 매우 공적인 목표이며 이를 위해 개인정보를 취득하는 것은 독립적인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통해서 가능하다. 그뿐만 아니라 그렇게 취득한 정보가 범죄 구성요건을 입증하고 국민이 알아야 할 공익적 필요가 있다면 한정된 범위 안에서 공개도 가능하다. 예컨대 장자연 리스트의 경우, 성상납이 밀폐된 공간에서 이루어졌다고 할지라도 그 공간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기록이 범죄 구성요건의 증거이고 국민이 권력비리 수사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감시하길 원할 때는 이 기록을 공개하는 것도 가능하다. 피디수첩 수사에서도 이메일 내용이 범죄 구성요건과 관련이 있다면 공개가 허용될 수는 있었다. 하지만 개인의 정치적 입장이 범죄 의도성과 관련지어지는 것은 헌법적으로 금지되기 때문에 공개가 부당하다.
더 큰 문제는 피의자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이다. 공적 사안에 대한 공개는 가능하지만 그 공개는 최소한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수사기관이 자신에게 유리한 내용만을 공개하여 판사나 배심원이 편견을 가지게 되면 공정한 재판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폐해를 막기 위해 피의사실 공표죄가 존재한다. ‘재판 청구 이전’의 공표만 금지되는데 이번 공개는 기소와 동시와 이루어졌다는 검찰의 항변은 궁색하다. 피의사실 공표죄는 기본적으로 검찰이 ‘여론재판’을 하지 말라는 것이며 재판 청구 이전이든 이후든 불필요한 공개는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대검의 인권보호 수사준칙에도 반영되어 있다.
검찰은 자신에게 유리한 사실들만을 공개하여 자신의 수사나 기소에 유리한 여론을 형성하고 다시 그 여론에 힘입어 체포·압수수색·구속 등의 강압적 조처를 취하거나 이런 조처를 위협하여 피의자의 ‘협조’를 강제해내는 수사방식을 반복해왔다. 이런 수사방식에 의해 전직 대통령의 목숨이 희생되었음을 상기해야 한다.
박경신 고려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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