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논설위원
박원순, 서중석, 손호철, 안병욱, 박경서, 오창익 …. 이들 진보적 성향의 학자와 시민운동가들이 경찰과 맺은 인연의 공통점은? 경찰한테 고초를 겪은 악연일까. 아니다. 한때 경찰이 ‘고견’을 듣겠다며 모셔 갔던 사람들이다. <경찰 60년사> 발간 자문위원, 경찰인권위원회 위원 등으로 말이다. 참여정부 때 이야기다. 지금의 분위기에 비춰보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한동안 경찰의 최대 화두는 인권이었다.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인권 경찰’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긴 장정의 첫발을 내디뎠다.” 2006년 말에 발간된 <한국 경찰사 제5권>은 아예 한 대목을 ‘인권경찰상 구현’에 할애했다. 인권수호위원회, 시민인권보호단, 인권보호센터, 인권상담전화 등이 신설되고,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직무준칙이 제정됐다. 하지만 이는 모두 과거지사가 됐다. 이제 경찰은 아무도 인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지난해 6월 경찰인권위원회 위원들이 경찰의 촛불집회 과잉진압을 비판하며 전원 사퇴한 뒤 1년이 넘도록 새로운 인권위 구성은 감감무소식이다.
업보를 쌓기는 쉬워도 벗어나기는 어렵다. 경찰이 그렇게 몇 년을 발버둥 쳤어도 권력의 하수인, 인권 탄압의 첨병이라는 원죄에서 쉽게 헤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새 정부 들어 경찰은 그나마 쌓은 공든 탑마저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다. 다른 것은 다 제쳐놓고라도, 용산참사의 그 무서운 업보를 과연 어떻게 감당하려는지 모르겠다. 이 사건은 경찰이 ‘악몽’으로 규정한 박종철씨 고문치사 사건 등에 못지않게 경찰 역사의 어두운 한 페이지를 장식할 게 분명한데도, 경찰은 철거민들의 생존권 투쟁을 표적 삼아 ‘대테러 훈련’을 실시하는 ‘무개념’을 과시하고 있다.
경찰 고위 간부들은 “사회 갈등의 뒤처리 책임이 힘없는 경찰에 떨어진다”고 하소연한다. 하지만 부득이한 법질서 확립 활동과 권력에 대한 과잉충성을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대중이 어리석지는 않다. 경찰은 물리적 충돌의 원인을 “폭력적이고 과격한 좌파 탓”으로 돌린다. 그러나 단식중인 신부에게까지 폭력을 행사한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는 못한다.
경찰이 스스로 자존심을 내팽개친 대가는 초라하다. ‘경찰은 역시 안 돼’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크게 변한 게 공중화장실과 경찰이라고 생각했는데 뒷부분은 취소야’ 따위의 경멸과 조롱이 쏟아진다. 그렇다고 권력이 ‘보은의 선물’을 안겨줄 것 같지도 않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은 경찰을 마음먹은 대로 활용할 수 있는 편한 도구로 여길 뿐이다.
과잉충성의 맨 앞줄에는 경찰 총수가 있다. 이들은 누구보다 경찰조직에 대한 애정을 강조하지만, 실상은 조직에 누를 끼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용산참사의 주역인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이 자유총연맹 부총재로 복귀한 것은 경찰조직에 득이 될까 해가 될까. 최근 만나본 몇몇 전·현직 경찰관들은 대부분 그의 처신이 경찰을 더욱 곤혹스럽게 만들었다고 여기고 있었다.
한 전직 경찰청장은 이렇게 말했다. “요즘 경찰은 간부들은 물론 비간부들도 경찰 총수가 하는 행태를 모두 꿰뚫어보고 있다. 심지어 자기들끼리 현직 청장을 놓고 ‘○순경’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결국 경찰 총수 하기 나름이다. 경찰조직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치에 휘둘리면 안 된다. 1~2년 지나면 그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강희락 경찰청장은 경무관 승진 대상으로 확정됐을 때 감격의 눈물까지 흘렸다고 전해진다. 그 눈물은 단지 개인적 성취에 대한 환희의 발로였는가, 아니면 나라와 조직에 ‘제대로’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데 대한 소명의식의 눈물이었는가. 기로에 서 있는 경찰의 운명을 놓고 본인 스스로 곰곰이 성찰해 봤으면 한다.
김종구 논설위원kjg@hani.co.kr
김종구 논설위원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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