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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노동부, 진실인가 진심인가 / 김진

등록 2009-07-13 21:24

김진  변호사
김진 변호사
내 즐겨찾기, 그중에서도 언제나 브라우저에 떠 있는 ‘연결’ 카테고리에는 ‘노동부’ 누리집이 있다. 적어도 하루 한 번은 방문하고, 홍보 메일도 받는다. 이만하면 ‘정책 고객’까지는 아니어도 ‘열혈 고객’쯤은 될 터. ‘알림마당’에 들어가 보도자료를 거슬러 가본다. 2004년 9월 정부는 노사정위에서 받은 공익위원 안을 바탕으로 비정규직 ‘보호’ 법안을 제출한다. 기간제 근로자를 쓰려면 합당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는 노동계 주장을 “계약의 자유와 유연성을 과도히 제약”한다며 받지 않았고, 기간 ‘제한’으로 “해고 제한 규정을 회피하기 위하여 기간제 근로계약을 반복 갱신하는 것을 규제”한다고 했다. 2006년 11월 법이 제정되자, “사용 기간이 최대 2년으로 제한됨으로써 비정규직 근로자의 남용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선전했다.

법 시행 직후에는 앞장서 법 지키는 ‘좋은 선례’로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내세웠다. 2007년 말 기준 9172개 공공기관의 비정규직 근로자 6만7600명이 정규직으로 전환되었다며 “공공기관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통해 과거의 불합리한 비정규직 사용 관행을 극복하고 올바른 비정규직 사용 관행을 확립해 나가는 좋은 선례가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지난해 8월부터는 설문조사를 해 “2년 유지 시 기간제 근로자를 해고하겠다고 응답한 100인 미만 기업 중 제도적으로 기간 연장 시 계속 고용하겠다는 기업이 60%”라고 하더니, 올해 3월엔 많은 기업에서 2년이 넘기 전에 고용관계를 종료해, 오히려 일자리를 잃는 사례가 발생하니 그 기간을 4년으로 연장해야 한다고 나섰다. 그 후 4개월. 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백만명의 실업자가 발생한다는 위협 끝에, 기간 제한의 효력이 발생하기 시작하는 7월이 지나자 “그것봐라”며 실제 해고된 사례를 가져다 대는데, 알고 보니 이들은 대부분 ‘좋은 선례’라던 공공기관. 기를 쓰고 이 법의 제정을 막으려고 국회 발언대에 버티고 섰던 민주노동당과 노동계는 이 법을 지키려고 안간힘이고, 이 법을 만들고 선전하였던 노동부 공무원들은 나쁜 법이니 개정해야 한다고 한다.

요즈음 하나같이 이해하기 어려운 일투성이지만, 5년 동안 ‘비정규직법’을 둘러싸고 노동부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이해 불가’의 차원을 넘어서 어지럽다. 배역이 바뀌어도 너무 바뀌고, 그다음 장면을 예상할 수 없어 한시도 눈을 떼기 어려운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다.

무식한 ‘고객’을 위해서인지 “비정규직법 관련 오해와 진실”이라는 메일이 와, 너무 반가워 바로 클릭했더니 … 아뿔싸, 질 나쁜 참고서 때문에 시험 망칠 판이다.

“오해 1. 기간제법은 정규직 전환법이다 - 정부가 법을 개정해서 정규직이 될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 - 진실 1. 기업은 2년이 넘기 전에 계약만료 시점에 언제든지 고용을 종료시킬 수 있음. … 오해 3. 실직자 대책은 마련하지 않고 고용대란만 강조했다 - 진실 3. 비정규직 실직을 막는 가장 중요하고 직접적인 대책이 법 개정임. 법 개정에 발목을 잡으면서 정부의 무대책 운운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음.” 이 모든 게 법 때문이고, 이 법을 고치는 게 가장 중요하다니, 도대체 무슨 말인가. 문제는 풀리지 않고, 메모라면 몰라도 이런 쪽대본을 ‘주요 정책 자료’라고 내놓는 오만함에 기가 질린다.

아, 인쇄 사고인가? ‘진실’이 아니라 ‘진심’의 오타. “기업은 2년이 넘기 전에 계약만료 시점에 언제든지 고용을 종료시킬 수 있음.” 유예든 연장이든, 다음 2년도, 그다음 2년도?

김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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