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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프리즘] 돈을 낼 만한가? / 김회승

등록 2009-07-16 21:37수정 2009-07-17 00:06

김회승  산업팀 기자
김회승 산업팀 기자
“그는 제게 많은 기쁨을 주었습니다. 기꺼이 세금을 내겠습니다(I’ll pay for it).”

마이클 잭슨의 장례 비용을 누가 치를 것인가를 두고 미국 여론이 시끌시끌하다. 얼마 전 현지 방송사의 거리 인터뷰에서 한 시민의 답변이 인상적이었다. 고인이 생전에 자신에게 제공한 효용을 따져볼 때, 자신이 낸 세금으로 그의 장례를 치르는 데 동의할 수 있다는 취지다. 대규모 적자로 눈치를 보던 로스앤젤레스 시 당국이 최근 “장례비는 우리가 내겠다”고 나선 것도 이런 여론 흐름 덕분이다. 죽음에 대한 우리 정서로 보면 강퍅한 논리로 비춰질지 모르나, 세금의 의무와 권리를 잘 이해하고 있는 셈법인 것만큼은 맞다.

우리 정부가 요즘 세금 때문에 꽤나 골머리를 앓고 있다. 재정 지출이 크게 늘어 어떻게든 세원을 늘려야 할 처지에 몰렸기 때문이다. 대규모 감세로 올해에만 12조원, 내년에는 22조원의 세수가 줄어든다. 반면에 4대강 사업을 비롯해 조단위의 대규모 국책사업은 줄줄이 대기중이다. 이곳저곳 세금은 깎아줬는데 쓸 돈은 더 많아졌으니, 어떻게든 나라 곳간을 채워넣지 않으면 적자 확대가 불가피한 것이다.

물론 방법은 간단하다. 그동안 깎아주던 세금을 제대로 걷고, 다른 세금을 더 걷으면 된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서민 정책 강화’를 선언한 뒤 상황이 꼬이기 시작했다. 이전처럼 손쉽게 소비세(간접세)를 올려 세수를 메우려던 정부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당장 간접세를 늘리려니 ‘서민 정책 한다면서 서민 부담만 늘린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담배와 술에 붙는 세금을 올리려는 시도는 국책연구원이 바람만 잡다 꼬리를 내렸다. 취약 계층의 비과세·감면 제도에 손을 대는 건 더더욱 힘들어졌다.

대기업과 고소득자의 부담을 늘리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자, 이번엔 역풍이 거세다. 감세와 규제완화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기본 철학을 포기한 것이라는 비판이 쏟아진다. 보수 언론은 ‘기업 프렌들리’ 정책 기조를 유지해야 투자가 일어난다며 아우성이고, 재계의 이익단체인 전경련은 “초심으로 돌아가라”고 목청을 높인다.

경기라도 좋으면 나라빚을 더 내서라도 버티겠지만 이 또한 여의치 않다. 재정 여력은 바닥이 보이는데, 경기는 여전히 불안하고, 투자와 고용은 살아나지 않고 있다. 경기 부양의 바통을 받아줄 것으로 굳게 믿었던 대기업들은 여전히 팔짱만 끼고 있다. 청와대와 경제 부처가 나서서 아무리 눈치를 줘도 모른 척하니, 최근에는 아예 노골적으로 팔을 비튼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부로선 할 일을 다했다. 이젠 여력이 없다”며 민간부문 투자를 읍소했다. 특정 대기업을 지목해 감세 혜택만 누린 ‘먹튀’라고 면박을 줬지만, 정작 해당 기업은 “(투자는)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다”라며 일축했다.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은 신성장동력 사업에 참여할 대기업들을 꿰다 맞추느라 바쁘다. 하지만 억지 춘향 식으로 참여한 기업들은 입이 댓 발은 나왔다. 정부 논리라면 일종의 ‘보은 투자’를 하라는 것인데, 기업들이 권력의 헛기침에도 눈치를 살피던 시절에나 통하던 논리다.

국민들은 내가 낸 세금의 효용을 따지고, 기업들은 투자를 할 만한 가치를 따진다. 국민에게든 기업에게든, 정부 정책은 ‘기꺼이 내 돈을 지불할 만하다’는 신뢰를 얻으면 된다. 정치적 목적을 숨긴 꼼수는 금세 들통이 나고, 뚜렷한 방향 없이 휘둘리는 정책은 신뢰하기 어렵다. 근원적 처방이라면, 근원적 처방다워야 한다.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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