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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지록위마 / 김지석

등록 2009-07-27 18:32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모든 물방앗간 주인은 자신의 수차에 물을 끌어들인다’라는 프랑스 속담이 있다. 누구나 자신에게 이롭도록 생각하거나 행동한다는 뜻이다. 우리말의 아전인수(我田引水, 제 논에 물대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 속담은 사람의 이기적 본성을 꼬집는 수준인 데 비해, 아전인수란 말에는 공동체적 가치를 무시하고 제 속셈만 차리는 이에 대한 강한 비난이 담겨 있다. 농부와 방앗간 주인의 처지가 달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제 논에만 물을 대는 이는 대개 가당치도 않은 주장을 한다. 그래서 아전인수는 견강부회(牽强附會)와 통한다. 이 말은 중국 송나라 때 음양오행설을 비판하며 쓴 책에 나온 ‘견합(合)부회’라는 표현에서 유래한다. 사실 복잡다단한 인간사를 오행의 움직임으로 단순화해서 설명하려면 무리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비슷하지만 좀더 강한 말로 수석침류(漱石枕流)가 있다. 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을 베개 삼는다는 뜻으로, 잘못인 줄 알면서 억지를 부리는 경우다. 중국 진나라 사람 손초가 ‘돌을 베개 삼고 흐르는 물로 양치질하는 생활을 하고 싶다’(枕石漱流)고 해야 할 것을 거꾸로 말했다가 친구의 지적을 받았으나 끝까지 고집을 부린 데서 연유한다. 이보다 훨씬 센 표현이 지록위마(指鹿爲馬)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다니, 웬만한 권력자가 아니면 엄두도 못 낼 일이다. 이 고사의 주인공인 중국 진나라 승상 조고는 말이 아니라고 한 신하들을 기억했다가 차례차례 죽였다.

국회에서 언론관련법이 날치기 처리된 뒤 이 법의 본질과 적법성을 두고 한나라당과 친정부 언론들의 궤변이 이어지고 있다. 법안 처리가 잘못이라는 국민이 70%가 넘고 60% 이상은 무효라는데도 잘했다고 부득부득 우기는 것을 보면, 아전인수·견강부회·수석침류를 넘어 사슴을 말로 바꿀 수 있는 권력을 믿는 모양이다.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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