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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조봉암 선생 50주기, 명예회복을 / 김삼웅

등록 2009-07-29 20:42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이승만 대통령과 친일파들이 죽산 조봉암 선생을 ‘사법살인’한 지 7월31일로 50주년이 된다. 치열한 독립운동가, 평화통일론자를 권력에 중독된 이승만과 친일에서 반공으로 ‘성형수술’한 법조인들이 합작하여 처형한 뒤 반세기가 지났다. 그 억울함과 부당함, 불법과 폭력이 아직까지 신원되지 않고, 재심 조처와 독립유공자 인정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은 한국 사회의 야만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죽산은 일제와 싸우다가 체포되어 손톱이 뽑히는 고문을 당하고, 신의주 감옥에서 7년을 복역하면서 혹독한 추위 속에 동상으로 손가락 7개를 잘라내기도 했다. 해방 이듬해 박헌영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민족진영에 가담하여 제헌의원과 초대 농림부 장관을 맡아 정부수립 과업에 기여했다. 그리고 “평화통일론”과 “고루 잘사는 사회” 건설을 내세우며 이승만 정권에 도전했다가 정치보복을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승만은 자신의 정적 죽산을 죽이기 위해 국무회의에서 세 차례나 ‘죽산 재판 문제’를 언급하여 사법부에 압력을 가하고, 검찰과 법관들은 ‘국부’의 뜻을 받들어 총대를 멨다. 상고심의 재판장 김세완과 주심판사 백한성·변옥주 등은 총독부 판사로서 독립운동가들에게 유죄 판결을 선고했고, 사형집행에 서명한 홍진기 법무장관 역시 총독부 판사를 지낸 인물이다. 해방 조국에서 총독부 판사 출신들이 독립운동가에게 애먼 누명을 씌우고 공산주의자로 몰아 처형한 것은 반문명·반이성·반민족의 극치다. 1959년 7월이면 해방 9년이 지난 시점인데, 감옥에 가 있거나 은둔했어야 할 친일파들이 법복을 입고 독립운동가를 처단한 것은 참괴이고, 그런 ‘전통’이 지금까지 사법부에 이어지고 있는 것이 참담하다.

죽산은 투철한 독립운동가, 진보적인 평화통일론자, 양심적인 개혁정치인이었다. 이승만의 비현실적인 북진통일에 맞서 평화통일론을 제기하고 자유당의 부패한 독재권력에 대항하여 개혁정치를 주창하다가 용공으로 몰려 회갑을 두 달 남겨두고 처형되었다. 6·25전쟁 때는 공산군의 체포령이 내려지고 부인이 납북되는 시련을 겪었다. 제헌의회 헌법기초위원으로 선임되어 국민기본권 신장과 균형 있는 경제 조항을 신설하고, 초대 농림부 장관에 기용되어 농지개혁의 기초를 만들었다. 전쟁 때 농민들이 북한 인민군에 협력하지 않은 것은 죽산의 농지개혁 기초에 힘입은 바 컸다. 제3대 대통령 후보로서 국민의 지지를 받아 “투표에 이기고 개표에 지는” 불운을 겪었다. 이것이 화근이 되어 결국 교수대에 서게 되었다.

죽산의 생애에서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진보당의 정강과 정책은 당의 강제해산과 당수의 처형 이후 ‘불온’의 대상이 되고 망각에 묻혔다. 죽산은 유언에서 자신은 ‘평화통일의 씨앗’을 뿌린 것이고 열매는 후대에 맡긴다고 말했지만, 반세기가 지난 오늘 또다른 이 대통령 치하에서 평화통일운동은 용공좌경의 동의어가 되고 다시 북진통일론이 고개를 쳐들고 있으니, 50년대의 트라우마가 반복되는지, 역사가 거꾸로 가는지 개탄스럽다.

브루노가 이단으로 몰려 화형당할 때 “말뚝에 묶여 있는 나보다 나를 묶고 불을 붙이려는 당신들이 더 공포에 떨고 있을 것이다”라고 했듯이 한 치 앞을 볼 줄 몰랐던 이승만과 수하들은 죽산을 죽인 지 9개월 만에 4월혁명으로 외국으로 도망치거나 투옥되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죽산 사건은 정치탄압이므로 명예회복 조처를 취하라고 권고했다. 이제 정부는 선생을 독립운동가로 서훈하고, 사법부는 재심을 통해 선생의 명예를 회복시켜야 한다. 이것은 50년 묵은 산 자들의 책무이다. 삼가 죽산 선생의 명복을 빈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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