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규 논설위원
육법당과 검언당은 형제다. 육법과 검언이 이름이고, 성은 당이다. 둘은 나이 차가 크지만, 하는 짓은 판박이다. 동네 사람들의 뜻을 무시하고 자기 잇속 챙기기에만 몰두하는 게 생활철학이다. 특기는 다른 사람들이 항의라도 할라치면, 어르고 윽박질러 제압하는 것이다.
육법당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낳았고,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키웠다. 군사독재의 자식인 셈이다. 5·16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박 전 대통령은 정통성의 부재를 서울 법대 출신 명망가들의 머리를 빌려 채우려고 했다. 육사 출신 군인과 서울 법대 출신 민간 전문가들의 결합체인 육법당은 이렇게 태어났다. 군인이 앞에서 끌고 서울 법대 출신이 뒤에서 미는 육법당 체제는 공화당부터 민정당까지 30년간 이 나라를 지배했다.
이런 흐름이 바뀐 것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 때였다. 하나회의 전격 해체가 말해 주듯, 김 전 대통령은 군인을 미워했다. 당에서도 군인을 솎아냈다. 그 공백을 채운 세력은 묘하게도 육법당 시절에 군인 뒷바라지를 해주던 법조인들이었다. 그중에서도 검찰 출신이 주류를 이뤘다. 김 전 대통령은 집권 뒤인 1996년 2월, 민자당 간판을 내리고 신한국당을 새로 차렸다. 그리고 두 달 뒤 열린 15대 총선에서 몇몇 재야인사와 함께 거물급 ‘정치검사’를 대거 발탁해 공천했다. 92년 14대 대통령선거 당시 노골적인 지역감정을 부추긴 부산 초원복집 사건의 주역인 김기춘 전 법무장관, 검찰총장 임기를 마치고 바로 여당 공천을 받아 윤리 논란을 일으킨 김도언, 안기부 시절 고문 논란을 일으킨 정형근, ‘6공의 황태자’ 박철언씨를 구속한 홍준표, 박종철 사건의 범인 은폐 사실을 알고도 덮은 안상수씨 등이 이때 처음 정계에 입문했다. 15대 국회 이전엔 검사 출신 여당 의원이래야 이한동·박철언·박희태·강재섭씨 정도였으니 큰 변화였다. 검찰 출신의 정계 진출은 판사 출신인 이회창씨가 한나라당 총재를 맡으면서 더욱 탄력을 받았다.
이명박 정부 들어선 급기야 ‘검찰당’이라고 부를 정도가 됐다. 지금의 한나라당을 이끄는 쌍두마차인 당 대표와 원내대표가 모두 검찰 출신의 박희태·안상수씨라는 것만 봐도 이런 사정을 알 수 있다. 바로 직전의 당 대표와 원내대표도 강재섭·홍준표씨였다. 이렇듯 검사 출신이 한나라당을 쥐락펴락하고 있으니, 당 운영과 분위기도 ‘검새스럽다’. 입법 전쟁, 일사불란과 같은 검찰 냄새 짙은 용어가 난무한다. 서민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정치는 없고, 위쪽의 심기만 살피는 통치만 보인다. 더욱 심각한 일은 민심에 민감해야 할 언론인 출신 의원들이 그런 소임을 방기하고, 검찰 통치에 동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검찰과 언론 출신이 발을 맞춰 판을 주도하고 있다. 수에서도 검찰과 언론 출신은 168명의 한나라당 의원 중 각각 16명, 17명을 차지한다. 쌍벽을 이루는 단일 직종 출신의 최대 집단이다.
언론관련법 날치기 처리는 검-언 합작으로 움직이는 한나라당의 실체를 잘 드러냈다. 검사 출신의 지휘부가 신호를 보내자, 전직 언론인들이 일사불란하게 날치기를 감행했다. 마치 육법당 시절, 군인 출신의 지휘에 맞춰 서울 법대 출신이 일사불란하게 부역했던 것처럼. 직권상정을 결정한 김형오(동아일보) 국회의장, 사회를 본 이윤성(한국방송) 국회 부의장, 법안 처리에 앞장선 고흥길(중앙일보), 김효재·최구식·진성호(조선일보), 강승규(경향신문) 의원 등이 그들이다.
민심보다 욕심을 앞세웠던 육법당의 말로는 불행했다. 다수 국민의 반대에도 언론관련법을 밀어붙인 검언당의 미래는 어떨까? 정답은 이미 나와 있다.
오태규 논설위원ohtak@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