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구 논설위원
아침햇발
“꼭 죽여야 끝나는가! 살고 싶다!”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점거 노동자들의 절규였다. “우리도 살아야 할 거 아니냐.” 먼저 살아남은 쌍용차 직원들은 이렇게 외쳤다. 서로 살겠다고 하면서 죽도록 싸워야 했던 이 역설은 어디에서 시작됐는가.
그 바탕에는 정리해고가 자리잡고 있다. 임금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노동자에게 해고는 사실상 죽음이다. 해고되고 나면 회사가 정상화되고 경제가 살아나더라도 그들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다. 따라서 최후의 수단으로 정리해고를 시행할 때는 노동자들이 동의하지는 못하더라도 이해는 할 수 있을 정도의 투명하고 엄격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이런 기준이 마련되지 않으면 아무리 배가 가라앉는다고 해도 누구도 선뜻 배에서 내리려 하지 않을 것이다. 쌍용차의 경우 이런 부분에 대한 사전 공감대가 부족했다.
불가피하게 배에서 내리게 할 때도 그냥 빈손으로 몰아내서는 곤란하다. 가능한 한 자력으로 생존을 모색할 수 있도록 구명조끼나 구명대 등 최소한의 생존 수단을 주어야 한다. 이런 장비 없이 맨몸으로 바다에 내던지려 하면 극렬하게 저항할 수밖에 없다. 어떤 논리도 생존 논리보다 앞서는 게 없기 때문이다. 정리해고의 불가피성을 역설하기 전에, 해고되더라도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사회안전망부터 튼튼히 보강하는 게 필요한 이유다.
기업 구조조정에 정부가 얼마나 개입해야 하는지는 사안마다 다를 것이다. 쌍용차의 경우는 노조가 공적자금 투입 등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요구했지만 정부와 채권단은 철저히 무시했다. 쌍용차 부실의 원인이 쌍용차를 중국 상하이차에 매각한 정부와 채권단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부의 개입 여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를 이유로 공적자금 투입까지 요구하는 것은 설득력이 약했다. 지원 규모를 떠나 국민 세금으로 조성되는 공적자금을 경영 부실로 도산 위기에 처한 민간 기업을 지원하는 데는 많은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정부나 채권단이 완전히 손 놓고 있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고용과 지역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자동차산업의 특성을 고려해 공적자금 투입 이외의 다른 지원책을 적극 검토할 필요는 있었다. 물론 정부가 개입하면 노사 자율협상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긴 하다. 하지만 그것도 사안마다 달리 대처할 수밖에 없다. 정부와 채권단이 불개입 원칙을 지키는 사이에 쌍용차는 회생 여부가 불투명한 최악의 상황에 몰렸다. 정부의 불개입 원칙은 관철했지만 그 결과로 무얼 얻고 무얼 잃었는지 냉철하게 따져봐야 한다.
두 달 넘게 계속된 노조 파업에 대응하는 정부와 회사의 태도는 우리 사회가 상식적으로 용인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 파업 농성장에 음식과 수도·전기는 물론 한때 의약품 반입까지 차단한 것은 선진국가에선 있을 수 없는 반인권적이고 반문명적인 처사였다. 인권위원회가 이를 시정하도록 몇 차례 긴급구제 조처를 권고했지만 그것조차도 무시됐다.
특히 강제진압 과정에서 경찰이 자행한 무자비한 폭력은 우리나라가 과연 국민이 주인인 민주사회인지를 의심케 했다. 서로 공방을 벌이는 과정에서는 어느 정도의 상호 폭력이 불가피하지만 무장해제된 노동자를 경찰들이 떼거리로 몰려가 군홧발로 짓밟고 쇠파이프로 후려갈기는 것은 공권력이 아니라 깡패집단임을 자인하는 꼴이다. 절제되지 않는 국가폭력은 정권의 정당성을 훼손하고 국민들을 정권에 등 돌리게 한다. 폭력이 만성화할 경우 가해자나 피해자 모두 인간성이 파괴됨으로써 사회 전체가 황폐해진다. 폭력의 악순환이 더 확산되기 전에 이런 야만적인 국가폭력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에 대한 범국민적인 논의를 시작하는 것도 우리 사회의 시급한 과제다.
정석구 선임논설위원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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