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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이성 잃은 국가공권력 / 하태훈

등록 2009-08-07 22:03

하태훈  고려대 법대 교수
하태훈 고려대 법대 교수
시론
다행히 제2의 용산참사는 없었다. 헬기로 경찰특공대가 투입된 엊그제만 해도 대형 참사가 우려되는 벼랑 끝이었다. 참사는 없었지만 인명사고의 위험이 노출된 과잉진압은 여전했다. 인명살상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온갖 신무기로 무장한 경찰력은 더이상 국가 공권력이 아니었다. 쓰러진 노조원을 방패로 찍어내리는 경찰의 몸짓은 분풀이성 폭력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국가 공권력 행사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경찰들은 적을 무찔러야 살아남는 전쟁터의 군인과 다름없었다. 방어를 위한 최소한의 물리력 행사가 아니라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듯 진압된 노조원을 향해 진압봉을 휘두르고 군홧발로 걷어차는 모습이 그대로 전파를 탔다. 그것은 불행하게도 촛불집회 이후 우리에게 낯익은 장면이 되었다. 마치 누구라도 걸리면 이렇게 진압될 줄 알라는 경고성 메시지를 던지는 듯했다.

인권은 안중에도 없었다. 이제 인권이라는 단어는 경찰과는 상관없는 것처럼 보였다. 인권 무시로 일관하는 정권에 충성할 뿐이었다. 법질서 확립이 개인의 인권보다 우선한다는 인식뿐이었다. 불법을 저지른 시위대든, 강도범이든, 불법체류자든 누구라도 사람이면 누려야 할 최소한의 권리마저 무시당하고 짓밟혔다. 시위대의 불법성이 물리력을 정당화시켜 주지 못할진대 경찰력은 한 치의 주저함도 없었다. 불행하게도 경찰은 집회와 시위가 시민의 기본권 행사가 아니라 사회 안녕과 질서를 파괴하는 ‘떼법’이자 불법이라는 잘못된 인식과 시각으로 무장되어 있었다.

규정과 기준도 없었다. 위법한 과잉진압만 있었다. 경찰관 직무규칙에는 강제 해산 때는 최소한의 물리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경찰 장비 사용 규정에 따라 인질범 체포나 대간첩·대테러 작전처럼 폭동 진압 때나 사용할 수 있는 다목적 발사기도 사용되고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테이저건도 등장했다. 노조원의 얼굴을 향해 발사하는 무모함도 보였다. 시위대의 새총과 화염병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며 진압 시 공격용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한여름 마실 물조차 없는 시위대에 발암추정물질이 포함된 최루액을 투하하는 비인간성도 드러냈다.

쌍용자동차 사태에서 경찰은 ‘강도에게도 인권이 있냐’며 생수 전달을 저지한 사쪽 직원과 다를 바 없었다. 과잉진압도 문제지만 형평성 잃은 공권력은 더 문제였다. 생필품 전달을 저지하는 사쪽 직원의 반인권적 행태를 방조하고 사쪽이 동원한 용역의 폭력행사를 눈감아주기도 했다. 노사에 등거리를 유지하고 노사 타협의 분위기를 조성하지는 못할망정 과도한 물리력의 노출로 시위대를 자극하기만 했다.

시민의 눈이나 텔레비전 카메라를 의식하는 주저함도 없었다. 옥상에서의 토끼몰이식 진압은 정말 아찔했다. 폭력은 더 큰 폭력을 부른다. 누가 먼저냐는 해묵은 논쟁이 있지만, 경찰이 신종 무기로 무장하면 할수록 시위대도 과격해진다. 수적으로 과도한 경찰력 투입을 보면 시위대는 위축되는 것이 아니라 폭력으로 대치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평화적인 집회시위 문화가 정착하려면 경찰이 먼저 물리력 행사를 자제해야 한다. 국가가 나서서 평화시위의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집회시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 집회시위에 투입되는 경비인력에 대한 인권교육에도 힘써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경찰은 혈세를 들여 개발하고 구입한 반인권적 진압장비로 무장하고 있다. 그런 공권력은 또다른 폭력일 수 있다. 그래서 공권력 행사는 최소한에 그쳐야 하는 것이다.

하태훈 고려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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