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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왕권신수설과 자본신수설 사이에서 / 김상봉

등록 2009-08-07 22:15

김상봉  전남대 교수·철학
김상봉 전남대 교수·철학
시론
쌍용차 사태가 타결되었다고 한다. 인화물질로 가득 찬 도장공장에서 엄청난 참사가 일어날 수도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로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앞으로 쌍용차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경영이 어려워지면 회사는 또 정리해고를 들고 나오고, 그러면 노동자는 다시 농성을 시작하게 되는 것인가? 마지막 한 사람의 노동자가 정리해고될 때까지, 그렇게 대립하다 타협하고 다시 타협하다 대립하면서 언젠가 자동차 경기가 좋아지기만 바라면 되는 것인가?

우리 시대, 노동자에게 해고는 곧 죽음이다. 그리하여 자본이 노동유연성이라는 그 허울 좋은 이름으로 해고의 권리를 행사할 때, 자본은 노동자의 생살여탈권을 쥔 절대권력으로 노동자 위에 군림하게 된다. 본질적으로 우리 시대의 모든 문제는 이 불균형 또는 불평등에서 생겨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배 또는 권력의 유형을 셋으로 나누었는데 첫째가 주인의 노예에 대한 지배요, 둘째가 가부장의 가족에 대한 지배이며, 셋째가 정치가의 시민에 대한 지배이다. 정치가의 지배는 평등한 사람들 사이에서 잠정적인 동의하에 이루어지는 지배라는 점에서 앞의 두 경우와 구별된다. 가부장의 지배는 비록 불평등한 관계이기는 하지만 사랑으로 지탱된다는 점에서 첫째의 경우와 구별된다. 아비는 자식에게 일정한 권력을 행사하지만 자식을 보호하며 자식이 위험에 처할 때는 자기의 목숨까지 걸고 자식을 지킨다. 이 점에서 한편의 불평등은 다른 편의 불균형에 의해 보완되는 것이다. 하지만 주인의 지배는 무엇인가? 모든 주인은 노예에게 생살여탈권을 행사하지만, 어떤 주인도 노예를 위해 목숨을 버리지는 않는다. 그러니 그것은 일방적이고 불평등한 착취의 관계일 뿐이다.

그렇다면 자본가의 노동자에 대한 지배는 어떤 종류의 지배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것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그러나 적어도 오늘날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가 평등한 계약관계가 결코 아니며, 그 양자가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도 아니라는 것만은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다. 결국 그것은 형식에서만 현대적일 뿐 본질에서는 주인의 노예에 대한 관계와 마찬가지로 일방적인 착취관계 이외에 다른 어떤 것도 아닌 것이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모든 시대 모든 사회에는 나름의 권력관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 관계가 공정하고 합리적이면 그 사회는 건강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그런 시대는 불안정하기 마련이다. 누구도 부당한 지배를 앉아서 견디려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의 기본적인 권력관계는 바로 이 자본가의 노동자에 대한 지배라는 새로운 노예제도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다. 자본은 단순히 우리의 생존만이 아니라 언론과 교육까지 장악하여 우리를 안팎으로 완벽하게 노예화하려 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목숨을 걸고 독재자들과 싸워 시민적 자유를 얻어낸 겨레이다. 생각하면 그것은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자랑스런 역사였다. 그런데 지금 독재자들이 떠난 자리를 자본가들이 대신하고 있다. 마치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떠난 자리를 친일파들이 장악했듯이! 그리고 그들은 말한다. ‘이것은 내 회사고, 내 돈이다.’ 오래전 왕들도 그렇게 떠들던 시대가 있었다. ‘짐이 곧 국가이다!’ 우리는 그런 왕들을 비웃지만, 그들에 비해 지금의 자본가들이 행사하는 권력은 얼마나 더 정당한 것일까?

그들의 재산도 그들의 신이 준 것인가? 그렇다면 이제 그 귀신들과 함께 그들로 하여금 이 땅을 떠나게 하자. 우리가 누구의 종노릇도 하지 않고 서로 사랑하며 살 수 있도록

김상봉 전남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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