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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금융적 기억상실증 / 정남구

등록 2009-08-10 18:23

정남구 기자
정남구 기자
생물학자들의 실험에 따르면, 붕어의 기억력이 2~3초라는 속설은 사실과 다르다. 영국 플리머스 대학 연구팀은 2006년 금붕어가 3개월가량의 기억력을 갖고 있다는 실험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이스라엘의 테크니온 연구소는 물고기에게 특정한 음악을 들려주며 먹이를 주는 훈련을 한 뒤 풀어놓았다가 4~5개월 지난 뒤 다시 그 음악을 들려주자 먹이를 먹으려고 몰려들었다는 실험 결과를 올해 초 발표한 바 있다.

물고기의 지능을 비웃는 인간도 망각에 자주 빠진다. 그 결과는 물고기가 낚시에 다시 걸리는 것만큼이나 치명적이다. 인간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금융위기가 언제나 비슷한 양상으로 재발하곤 했다. 경제학자 갤브레이스는 “금융위기가 아무리 심한 재앙이었다고 해도, 사람들이 그 기억을 머리에서 쉽게 지워버리기 때문”이라며, 이를 ‘금융적 기억상실증’이라 불렀다.

금융위기는 대개의 경우 자산 가격이 내재가치를 크게 뛰어넘는 거품 수준으로 커졌다가 터지면서 일어난다. 너도나도 그런 자산을 비싼 값에 사는 데 매달리지만, 언젠가는 더 비싼 값에 사줄 바보가 더는 나오지 않게 된다. 투기의 결과로 손실을 보게 된 사람을 정부가 어떻게 대하느냐는 금융적 기억의 지속에 중요한 변수가 된다. 정부가 투기자들을 전혀 구제하지 않는다면 위기에서 회복하기 전에 경제가 치명상을 입을 것이다. 하지만 닥치는 대로 구제한다면 사람들은 훗날에도 안심하고 투기에 뛰어들 것이다.

미국의 주택가격 거품 붕괴로 금융위기가 일어나면서, 세계 경제가 깊은 수렁에 빠져 아직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놀라운 사례는 우리나라다. 서울 강남의 집값은 금융위기 전 수준으로 돌아가고 있다. 투기에 뛰어든 사람은 완벽하게 구제받았다. 거품을 경고하는 사람들이 바보가 돼 가고 있으니, 위기의 기억은 이미 까맣게 잊은 것 아니겠는가.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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