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길 국제부문 선임기자
한겨레프리즘
지난주 한반도에서는 대조적인 풍경이 빚어졌다. 미국의 두 전직 대통령이 한반도를 방문했다. 성향이나 업적에서 대조적인 두 사람은 이곳에서 한 행보 역시 대조적이었다.
부자 감세, 대기업 중시, 군확 노선을 펼친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역시 한국의 재벌 집단인 전경련의 초청으로 방한했다. 일정 중에는 방위산업체, 즉 군수업체인 풍산그룹의 기업주 초청을 받아 그 회사가 설립한 고교를 방문해 강연하기도 했다. 그는 한 재벌 회사가 소유한 제주도 목장에서 현직 대통령 부럽지 않은 대접을 받고 돌아갔다.
부시와는 정치적 성향이 반대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북한에 억류된 미국 여기자들의 부탁, 본질적으로는 북한 당국의 초청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부시가 한국 재벌들의 돈으로 귀빈 대접을 받은 반면, 클린턴은 미국 여기자 석방이라는 인도적 목적에 동의한 미국 대기업과 부자의 후원으로 북한 방문 여비를 충당했다. 부시가 극진한 대접만 향유하고 한국을 떠난 반면, 클린턴은 여기자들을 데리고 북한을 떠났다.
더 흥미로운 것은 남북한 당국, 최고 지도자였다.
부시 방한에서 압권은 현직인 이명박 대통령의 예우였다. 이 대통령은 청와대 참모들을 대동하고 전용기를 이용해 직접 제주도로 날아가, 그와 1박2일을 보냈다. 부시는 청와대 참모들과 헬기에 동승해 서울에 왔다.
이 대통령은 취임할 때 자신이 모범을 보여, 전직 대통령들을 확실히 예우하는 문화를 정착시키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 후 노무현 대통령이 검찰의 추달에 의해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던져야 했다. 이 대통령의 전직 대통령 예우는 국내용이 아니라 국외용이었던 것 같다. 통상 미국의 전직 대통령이 방한해도, 그가 청와대를 예방하지, 한국의 현직 대통령이 그가 묵는 곳으로 가지는 않는다. 그것도 1박2일을 보냈다는 것은 파격적 의전이다.
이 대통령처럼 직접 찾아가 밤을 보내지는 않았으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도 클린턴을 끔찍이 대접했다. 그 대접에는 북한의 운명과 최근의 정세를 타개하려는 비장함도 있었다. 제임스 존스 미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북한은 클린턴 방북으로 “사진 찍는 기회밖에 얻지 못했다”고 평했으나, 북한은 그 사진 찍는 기회를 십이분 활용했다. 그 사진으로 이제 북한과 오바마 미 행정부의 대화와 접근은 시간문제로 변하고 있다.
클린턴이 미국 여기자를 데리고 가서야, 북한에 억류된 현대아산 직원 ㅇ씨의 석방도 비로소 매듭이 풀리고 있다. 이 대통령이 자신과 마음이 통하는 부시와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북한은 클린턴과의 만남이란 이벤트를 기획하며, 끼워주기 선물로 북한에 억류된 현대아산 직원 석방도 준비하고 있었다.
부시와의 만남에 이은 휴가에서 돌아온 이 대통령은 ㅇ씨 문제에 대해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역할을 다 하고 있다”며 “정부를 지켜봐 달라”고 당부했다. 방북하는 클린턴에게 우리 국민도 빼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역할은 아니었나? 금강산 및 개성 관광 재개 등은 이제 이 대통령과 절친한 부시에게 부탁할 것인지 궁금하다. 곧 광복절이다. 남북관계 등 우리 민족 안팎의 문제를 다시 고민할 때다. 이 대통령은 부시에게 쏟은 전직 대통령 예우와 사랑의 일부만이라도 여러 현안과 사람들에게 골고루 할애하면 좋겠다. 남북관계 같은 문제를 보면, 그가 신경을 쓰는 것은 같으나, 정성을 쏟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을 살면서 꼭 마음에 맞는 사람만 만나고, 정성을 기울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정의길 국제부문 선임기자 Egil@hani.co.kr
부시와의 만남에 이은 휴가에서 돌아온 이 대통령은 ㅇ씨 문제에 대해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역할을 다 하고 있다”며 “정부를 지켜봐 달라”고 당부했다. 방북하는 클린턴에게 우리 국민도 빼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역할은 아니었나? 금강산 및 개성 관광 재개 등은 이제 이 대통령과 절친한 부시에게 부탁할 것인지 궁금하다. 곧 광복절이다. 남북관계 등 우리 민족 안팎의 문제를 다시 고민할 때다. 이 대통령은 부시에게 쏟은 전직 대통령 예우와 사랑의 일부만이라도 여러 현안과 사람들에게 골고루 할애하면 좋겠다. 남북관계 같은 문제를 보면, 그가 신경을 쓰는 것은 같으나, 정성을 쏟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을 살면서 꼭 마음에 맞는 사람만 만나고, 정성을 기울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정의길 국제부문 선임기자 Egil@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