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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김민선과 오프라 윈프리 / 조국

등록 2009-08-12 20:16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미국산 쇠고기 수입·유통업체인 ㈜에이미트가 영화배우 김민선씨를 상대로 3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였다. 작년 ‘광우병 사태’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김민선씨가 자신의 미니홈피에 “광우병이 득실거리는 소를 뼈째로 수입하다니, 차라리 청산가리를 입안에 털어 넣는 편이 오히려 낫겠다”는 글을 올려 자신들에게 영업손실을 끼쳤다는 주장이다. 이어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과 뉴라이트 단체 ‘자유주의진보연합’은 이 업체를 옹호하며 김씨가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법률가로서 이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 드는 감정은 황당함이었다. ‘광우병 사태’의 근본 원인은 나라의 검역주권과 국민의 건강권을 위태롭게 만든 정부의 졸속 협상이었고, 지금 이 순간도 미국은 오스트레일리아(호주)와 같은 ‘경미한 위험국가’가 아니라 ‘통제된 위험국가’이며, 일본과 유럽 각국은 미국 쇠고기에 대하여 매우 엄격한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소송은 헌법상의 권리인 표현의 자유를 봉쇄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황당함에 더해 위기감을 느낀다. 이명박 대통령은 ‘광우병 사태’ 당시 미국 쇠고기는 “질 좋고 값싼 고기”라고 말하며 미국산 쇠고기를 선전하였다. 필자는 이에 동의하지 않지만, 이 대통령이 그렇게 말할 표현의 자유는 있다고 생각한다. 같은 맥락에서 김민선씨는 미국산 쇠고기를 청산가리에 비유하며 맹비난할 표현의 자유가 있다. ‘청산가리’라는 표현을 문제 삼는 이도 있겠으나, 이는 그가 자신의 사적 공간에 툭툭 던져놓은 독백의 일부일 뿐이다. 연예인이라고 해서 자신의 미니홈피에 글을 올릴 때 정제되고 품격 있는 용어만을 사용해야 한단 말인가?

그리고 김민선씨의 미니홈피 글과 ㈜에이미트의 영업손실 사이의 인과관계가 극히 희박하다. 예컨대 필자를 포함한 상당수의 시민들이 미국산 쇠고기를 사먹지 않고 있지만, 그 원인이 김씨의 글 때문은 아니다. ‘광우병 사태’ 전후로 많은 학자와 언론이 광우병의 위험을 알리는 글을 발표했다. 야당 시절의 한나라당과 ‘광우병 사태’ 이전 보수언론도 미국 쇠고기의 위험성을 역설하였다. 이상의 사람과 단체가 ㈜에이미트의 영업손실에 책임을 지지 않는 것처럼, 김씨도 법적 책임을 져서는 안 된다.

김민선씨에 대한 소송과 유사한 일이 10여년 전 미국에서 일어났다. 1996년 4월16일, 오프라 윈프리 쇼에 전직 방목노동자이자 사육장 관리자이며 ‘양심을 갖고 먹읍시다’ 캠페인의 대표인 하워드 라이먼이 출연하여 광우병의 위험을 고발하였다. 이에 윈프리는 “햄버거를 먹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고 말하였다. 그러자 텍사스육우협회는 그와 그의 프로그램 제작사, 라이먼을 상대로 1100만달러의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하였다. 결과는 육우협회의 패소였지만, 소송 과정에서 윈프리는 고통과 비용을 감수해야 했다.

김민선씨에게 소송을 건 회사나 그 법적 대리인도 오프라 윈프리 사건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소송을 제기한 이유는 먼저 김씨에게 정신적 고통과 경제적 부담을 안겨주어 본때를 보이고, 다음으로 예상되는 많은 비판자들에게 까불지 말라는 경고를 주려는 것이다. 정부가 ‘촛불시위’ 참여자를 형벌권을 사용하여 처벌하는 것에 더하여, 이제 기업이 나서서 민사소송으로 금전적 위협을 주려 하고 있다. 이런 소송은 소송 오·남용의 전형적인 사례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이번 소송 제기에 대하여 법원은 실체를 검토할 것도 없이 기각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소송은 헌법상 기본권에 대한 모욕이자 사회적 자원의 낭비이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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