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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노동 유연성과 고용 안정성 / 정석구

등록 2009-08-13 20:32

정석구  선임논설위원
정석구 선임논설위원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려는 정부의 발걸음이 최근 부쩍 빨라지고 있다. 쌍용자동차 사태가 끝나자마자 이명박 대통령과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잇달아 노동시장 유연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하지만 정부는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의 타당성에 대한 충분한 근거 없이 기업 논리에 따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어 사회적 갈등만 더 키우지 않을까 걱정이다.

우선,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왜 그리 강력하게 추진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노동 유연성을 높이려면 먼저 우리나라의 노동 유연성 수준이 다른 나라에 비해 턱없이 낮다거나 그로 인해 성장률 등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등의 구체적인 통계자료가 뒷받침돼야 한다. 우리나라의 노동 유연성이 세계에서 하위권에 속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이라든지, 노동자의 평균 근속연수가 4.9년으로 영미권 국가보다 2~3년 짧은 점 등을 고려하면 그리 낮은 수준이라고 할 순 없다. 또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여 성장률을 제고한다고 하지만 노동 유연성과 성장률을 비교한 자료를 보면, 둘 사이에 특별한 상관관계가 없다는 연구결과도 적지 않다. 한 민간연구소는 지난해 노동 유연성이 높아지면 노동자들의 고용 불안감이 커져 소비 회복을 가로막는다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그럼에도 정부와 재계가 노동시장 유연성을 그렇게 강조하는 것은 대규모 사업장과 공공부문의 강성 노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노조 조직률은 10% 안팎에 불과하다. 이들 소수의 조직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노동 유연성을 높일 생각이라면 정책의 방향과 수단을 지금과는 달리해야 한다. 일부 대기업 노조의 경직된 노사관계를 완화하려고 노동시장 전체의 유연성을 높이면 이미 충분히 유연화돼 있는 힘없는 노동자들만 더욱 열악한 처지로 내몰리게 된다.

또한, 기업 편에 서서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밀어붙여서는 성공하기 어렵다.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이 설득력이 있으려면 그 정책이 기업뿐 아니라 노동자에게도 궁극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노동자를 기업 이익을 위한 종속변수로 간주하면서 노동 유연성 문제에 접근하는 한 극렬한 노사대립은 피할 수 없다.

노동 유연성 제고가 필요하더라도 정부와 재계가 모든 것을 한꺼번에 취하려고 해서는 곤란하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노동자를 낮은 임금으로, 그리고 필요할 때 채용하고 해고할 수 있기를 바랄 것이다. 하지만 둘 중 하나는 양보해야 한다. 자유롭게 채용하고 해고하려면 임금은 정규직과 비슷한 수준을 보장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 유연성 제고의 최대 목표가 비용 절감인데, 그렇게 하면 무슨 효과가 있느냐는 불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채용과 해고도 자유롭게 하면서 임금도 정규직의 절반 정도로 낮게 가져가겠다는 것은 한마디로 노동자를 착취하겠다는 것과 같다. 그렇게 되면 이 정부가 추구하는 ‘노사문화 선진화’는 요원할 뿐 아니라 건전한 자본주의 발전에도 도움이 안 된다.

노동시장 유연화의 전제로 실직자에 대한 직업훈련을 강화하고 사회안전망을 확충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정부는 노동 유연성 제고를 강조하면서 이에 대한 언급도 빼놓지 않고 있지만 구체적인 정책으로 뒷받침되는 건 거의 없다. 노동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기에 앞서 실직자에 대한 사회안전망 확충 등에 얼마의 예산을 들여 고용 안정성을 어떻게 보장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부터 내놔야 한다. 결국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의 성패는 노동 유연성과 고용 안정성을 얼마나 조화시키느냐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정석구 선임논설위원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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