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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프리즘] ‘녹색 세탁’ 하지 마시라 / 남종영

등록 2009-08-13 20:36

남종영  사회정책팀 기자
남종영 사회정책팀 기자
5년 전 서울시청을 담당할 때,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이었다. 당시 그가 야심차게 추진한 청계천 복원 사업은 이듬해 봄 완공을 목표로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하루는 그가 청계천 공사 현장으로 공무원과 기자들을 불러 모았다. 출발 지점은 청계천 시작 지점인 광화문 <동아일보> 앞이었다. 이 대통령이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자신감에 가득 찬 현장형 사업가와 그를 뒤쫓는 양복 입은 사람들. 그건 마치 개발시대를 다룬 드라마 <영웅시대>를 연상시켰다. 약골에다가 게으름뱅이인 나는 헉헉대며 쫓아갔다. 으레 지방자치단체장의 연출 행사려니, 청계천로 3가쯤에서나 발길을 돌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 대통령은 멈추지 않았다. 두 시간 만에 기어이 다다른 곳은 동대문 지나 마장동이었다. 이 대통령은 거기서도 현장 관리사무소장에게 브리핑을 받고 점심을 먹었다.

그렇게 청계천은 완성됐다. 그것도 그의 짧은 임기 4년 안에 서울 도심의 대공사가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는 청계천의 작은 돌, 조경석 하나까지도 챙겼다. 물의 흐름이 느리다거나 돌다리가 건너기 불편하다고 지적하는 그는 쉴 틈이 없어 보였다. 누가 뭐래도 청계천이 초고속으로 완성될 수 있었던 건 그 때문이었다.

2년 전 이 대통령이 대선에 나서면서 ‘한반도 운하’를 말했을 때, 내 머리에는 청계천이 떠올랐다. 다시 ‘이명박표 작품’을 하나 만들려 하는구나. 지금은 ‘4대강 살리기’로 ‘변형’됐지만,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만은 강한 집착을 보이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이 대통령은 성과주의자다. 돈을 넣으면 상품이 배출되는 자판기처럼, 예산을 투입하면 가시적인 결과가 나와야 한다. 서울시장에 그가 4년을 투신했으므로, 그만의 작품이 나와야 직성이 풀렸을 것이다.

하지만 성과는 성과대로 평가받아야 한다. 청계천은 도시 조경으로 평가받을 일이지, 친환경 하천 복원으로 평가받을 일이 아니다. 청계천은 자연하천이 아니다. 한강물과 지하수를 인공적으로 끌어올렸다가 흘러내려보내는 ‘분수’에 가깝다. 하루 12만t의 물을 공급하기 위해 3만3000㎾h가 넘는 전기가 소비된다. 이는 약 3000가구가 하루 쓰는 전력량으로, 약 14t의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이 대통령은 지난 10일 라디오 연설에서 녹색 생활을 하자고 국민들을 설득했다. “녹색 기술보다 녹색 생활이 더 중요합니다. 녹색 생활은 누구라도 오늘 당장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연설을 듣고 한나라당은 실천의 힘과 숭고함을 일러줬다고 평가했는데, 정말이지 대통령의 연설이 아니라 열정적인 환경운동가의 호소 같다. 그런데 곤혹스럽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이와 딴판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제시한 온실가스 감축 시나리오는 2020년까지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5년 수준 안팎에서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주요 선진국이 따르는 교토의정서 수준인 2012년까지 1990년 대비 5.2% 감축보다 한참 뒤처진 목표다.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1990년에 비해 2배 넘게 늘었는데도 말이다. 한편에서는 2030년까지 7~8기의 원전을 추가로 건설하는 계획이 세워지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그는 환경주의자인 양한다. 이런 것을 요즈음 하는 말로 ‘그린 워시’라고 한다. 우리말로 ‘녹색 세탁’인데, 미국에서는 광고심의기구가 녹색 세탁을 심의하기도 한다고 한다. 그러니 녹색 세탁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성과주의자로서도 당신은 이미 훌륭하니까.

남종영 사회정책팀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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