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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협상 수준은 자유민주주의의 척도 / 배임호

등록 2009-08-14 19:48

배임호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배임호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여러 해 전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머물 때 버스업체들 사이에 일어난 갈등으로 인하여 죽창을 가지고 살상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순간적이나마 한국인으로서 우월감을 느낀 적이 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착각이었음을 이번 쌍용차 사태를 보면서 깨달았다.

지난주 초까지만 해도 매스컴에 보도되는 싸움장면들은 냉전시대에 국가간의 전쟁에서나 볼 수 있었던 그대로였다. 각종 사제무기가 등장하고 헬리콥터까지 동원되어 서로가 사력을 다하여 결투를 벌이는 듯한 장면들이었다.

77일간의 싸움이 남긴 폐해는 수천억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회사와 노조, 협력업체, 그리고 가족들과 온 국민에게 미친 경제적 비용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고통과 상처는 화폐가치로 다 환산할 수 없다. 단기간에 해결될 수 없는 문제들은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계속되는 노사와 노노 갈등, 심지어는 그들 가족 사이에 존재하는 적대감을 해소하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기업으로서 쌍용은 시장의 신뢰와 국제경쟁력에서 필수적인 브랜드 가치를 상실하였다.

이번 쌍용차 사태의 경우 협상다운 협상이 있었는지 의심스럽다. 국가 사이의 전쟁도 아닌데 피를 본 다음에 이뤄지는 것은 협상이 아니다.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다 저지르고 쌍방이 응급실에 실려 가면서 초라한 모습으로 만든 합의서는 협상 결과가 아니다. 상대방의 생명을 개의치 않는 투쟁과 전쟁이 있은 후 이뤄지는 협상은 굴종일 뿐 그 어느 누구도 승자는 아니다.

그러나 이번 쌍용차 사태가 현재의 수준에 머무르게 한 요인이 여러 가지 있다. 그 가운데 중요한 하나는 지나치게 근시안적인 복잡한 이해타산만 있었고 협상다운 협상과 협상전문가는 없었다. 이번 사태의 책임은 누구보다도 사측과 노측의 갈등해결능력 부족에 있으며, 협상의 방해꾼들이 많았다. 어느 한쪽을 응원하며 이해득실을 계산한 사람들, 사태를 부추기며 장기적으로 이끌어 가고자 한 사람들, 이번 사태를 자신들의 ‘쇼’를 위한 무대로 삼고자 한 사람들, 사태의 조기타결을 위해 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못한 사람들 모두가 방해꾼이 되었다.

협상은 갈등 당사자들의 자율과 책임에 중심 가치를 둔다. 협상은 협상 테이블에 앉기 전부터 화해와 협력의 정신으로 초지일관하겠다는 쌍방간의 가치이며 결단인 것이다. 협상은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보다 더 얻어내기 위한 과정이 아니다. 설사 이번 협상에서 더 득을 챙겼다고 해서 성공한 협상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협상은 한쪽이 얻는 만큼 상대방의 몫이 작아질 수 있다는 이해를 토대로 쌍방의 공동목표를 찾아 각자의 행동지침을 정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각종 갈등을 협상다운 협상으로 해결하게 될 때 갈등 당사자들의 관계가 지속 발전하고 또다른 갈등으로 인한 위기가 오더라도 대처할 수 있는 문제해결능력이 생기는 것이다.

사회 각계각층에 다양한 갈등의 요소들이 팽배해 있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갈등 해결을 위한 협상 수준은 그 사회의 민주주의 수준을 측정하는 지표이다. 이번 쌍용차 사태를 거울삼아 기업이든 정부든 어는 집단이든 무시로 찾아오는 숱한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 갈지 값비싼 교훈을 얻어야 한다. 협상을 통하여 유형의 결과뿐 아니라 무형의 대의명분과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다면 우리 사회는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이를 위하여 갈등해결 전문가와 중재자를 양성하고 건전한 협상문화에 지대한 관심과 각고의 노력이 요청된다.


배임호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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