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명렬 평화재향군인회 상임대표
최근 국군 기무사가 민간인을 불법 사찰한 사실이 밝혀져 비난과 우려의 목소리가 빗발치고 있다. 이는 5공 이전의 독재시대에나 가능한 작태로, 이명박 정부의 실상과 상황인식 수준을 보여주고 있어 충격적이다.
국군의 명예를 추락시키고 장병들의 자존심과 사기를 땅에 떨어뜨린 이 사건에 대해 경악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 기무사령부는 국군의 주요 정예부대다. 선진국에선 장병들과 국민들의 신망을 받는 모범부대로 대접받는다.
우리 기무부대는 불행히도 일본 군대의 특무부대를 그대로 본떠 같은 이름의 ‘특무부대’로 탄생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독립운동가의 색출과 고문에 악명을 날리던 김창룡을 초대 부대장으로 임명해 자신의 정적이 될 만한 독립운동가와 민족세력을 암살하는 주구처럼 특무부대를 이용했다. 기무사는 지금도 특무대의 초대 부대장인 김창룡을 떠받들어 그의 묘를 관리하고 있다.
특무대는 ‘통수권 보위’라는 미명 아래 친일·독재 무리들의 정권안보를 위한 구심 역할을 해왔다. 우리나라 헌법정신에 근거한 ‘항일 자주독립정신’과 ‘4·19 민주정신’을 계승하는 국군의 정체성과는 정반대의 길에 선 ‘친일분자’들과 ‘독재세력’의 방패세력이었다.
지난 민주정권 10년간, 우리 국군은 처음으로 헌법에 명시된 정치적 중립을 보장받아 정권의 간섭을 받거나 눈치 볼 필요 없이 의연당당하게 자존심을 지킬 수 있었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은 기무사령관과 독대해온 관례의 폐해를 뼈저리게 인식하고 이를 완전히 철폐했다. 권력기관의 책임자를 독대하지 않겠다는 것은 그의 확고부동한 철학이요 신념이었다. 생명처럼 소중한 군의 지휘권 보장 ‘원칙’을 그는 실천으로 지켜주었다. 모든 조직은 정상적인 절차의 시스템에 의해 움직여야 한다. 한 사람의 귓속말이 판단과 결정에 영향력을 미치는 그런 불합리함은 많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지난 독재시대에 군과 관련된 모든 부정부패와 부조리의 중심에는 보안부대 요원이 개입되어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들의 특권의식에서 비롯한 월권적 작태의 근본원인은 바로 이 ‘독대’에서 비롯된다. 단둘이 앉아 무슨 말을 했는지 알 수 없으니 대통령이 임명하는 주요 부대의 지휘관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
사실 ‘독대’란 군사쿠데타가 두려웠던 독재자들이 군부 장악을 위해 써먹어왔던 비정상적인 관행이다. 독대를 통해서 고작 해묵은 ‘군내 불온서적 반입 금지’ ‘군내 상관 및 대통령 비하 발언 금지’ 등 공안정국 조성을 위한 국방부의 계책을 보고한 것일까? 급기야 국정원이나 검찰·경찰을 제치고 군이 직접 나서서 민간인을 미행 사찰하는 초강수를 써 대박을 터뜨림으로써 통수권자의 신임을 확고히 다지겠다는 것이었나? 군 최고 수뇌부 위치에 올라 있는 분들이 ‘역사’와 ‘정의’ 그리고 ‘국민’과 ‘국군장병’ 말고, 도대체 무엇이 그리도 두려운 것일까? 측은지심을 금할 수 없다.
국군 기무사는 김창룡의 옛 ‘특무대’와 박정희·전두환 시대의 ‘보안사’와 완전히 결별하라. 무고한 민간인을 고문해 간첩으로 조작해준 대가로 훈장 받고 진급한 사실이 부끄럽지도 않은가? 이를 기무사의 역사와 전통으로 이어받아 간직하고 싶은가? ‘기무사’라는 명칭은 그냥 이름만 바꾼 것이 아니다. 과거를 완전히 떨쳐버리고 다시 태어나라는 국민의 준엄한 명령인 것이다. 이번 의혹을 계기로 기무사를 개혁하여 국민들과 장병들의 신뢰를 받는 부대로 거듭나기를 당부한다.
표명렬 평화재향군인회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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