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구 기자
아테네 젊은이들의 영혼을 타락시켰다는 죄목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피하지 않고 당당히 죽음을 맞았다. 제자에게 남긴 그의 유언은 “아스클레피오스 신께 닭 한 마리를 바쳐야 할 빚이 있으니 대신 갚아달라”는 것이었다. 고려의 정몽주는 이성계의 역성혁명을 반대하고 철퇴를 맞는 길을 택했다. 세조의 쿠데타에 반기를 들었다가 능지처참을 당한 성삼문, 순교자 김대건 신부, 갑오농민혁명의 지도자 전봉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등도 뜻을 꺾지 않고 당당한 죽음으로 삶을 완성했다. 큰 길을 걷다 간 이들은 살아있는 동안만이 아니라 죽음의 과정을 통해서도 그렇게 세상에 큰 울림을 남긴다.
어제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난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 내란 혐의로 군사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타협하고 영화를 나눠 가질 수도 있었겠지만, “국민을 배신할 수는 없었다”고 그는 술회했다. 이미 죽음까지 경험한 그였기에 자신을 죽이려 했던 이들을 다 용서할 수 있었으리라. 정치와 권력의 생리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김 전 대통령은 얼마 전 벼랑 위에서 스스로 몸을 던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 “강요된 거나 마찬가지다”라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삶과 죽음이 다 자연의 한조각 아니겠는가”라며 “슬퍼하지 말라”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언 또한 범인의 경지를 훌쩍 뛰어넘었다.
중국 북송 때 사람 소동파는 왕안석의 개혁정책에 반대하다 십여년을 귀양살이로 보냈다. 죽기 두달 전에야 그는 겨우 유배에서 풀려났다. 죽음을 목전에 두었을 때 옛 친구가 “저승에 가기 전에 염불이라도 외워보라”고 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고승전>을 읽어보았는데, 그들도 결국엔 다들 죽었다는군.” 그렇다. 별들도 언젠간 떨어지고, 우리도 모두 죽는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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