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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이명박 대통령의 조사 / 여현호

등록 2009-08-24 21:34

여현호  논설위원
여현호 논설위원
이명박 대통령은 재임 중 전임자 두 사람의 장례를 치른 첫 대통령이다. 그것도 석 달 간격이다. 예사로운 상(喪)도 아니다. 이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직간접의 책임이 있다는 비난을 받았고, 병상에 들기 직전의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부터는 민주주의를 역행시키고 있다는 숨찬 질타를 들었다. 두 번의 영결식에서 한 번은 ‘살인자’, 또 한 번은 ‘위선자’라는 욕도 들었다. 이 대통령으로선 이런저런 소회와 감정의 격동이 없을 수 없게 됐다.

이 대통령도 심상하게 여기지는 않는 것 같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의 영결식 다음날 라디오 연설에서 화해·관용·타협을 말하고, 통합을 강조했다. 전임 대통령들에 대한 존중, 긍정의 역사도 이야기했다. 달라진 말이다. 적어도 김대중·노무현 집권 시절을 두고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폄훼하던 여권의 얼마 전까지 모습과는 분명 다르다.

하긴 ‘잃어버린 10년’은 애초부터 정치적 수사였다. 선거철 한때는 어려워진 살림을 김대중·노무현 탓으로 돌리게 하는 솔깃한 구호였지만, 얼마 안 돼 그 10년이 그나마 마음 편했던 시절이라는 걸 사람들이 깨닫게 되면서 진작에 용도 폐기됐다. 이재오 전 한나라당 최고위원도 ‘잃어버린 10년’은 “하나의 구호였을 뿐”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두 전직 대통령은 이제 역사다. 한때 공격과 비난의 대상이었던 두 사람의 업적은 두 차례의 국상을 거치면서 더는 시비가 불가능하게 공인을 받았다. 정부를 대표한 한승수 국무총리의 조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인권과 민주주의, 그리고 권위주의 타파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서민대통령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첫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 화해와 교류협력의 큰 길”을 열고 “민주주의의 기적을 이룬” “현대사의 위대한 지도자”다. 이 대통령은 그런 “전임 대통령의 업적을 기리고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의 일부로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말이 당장의 처지를 모면하려는 것이거나 의례적인 조사에 불과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금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 대통령 말마따나 “우리 국민의 뜻도 바로 그러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망각한다면 ‘큰 변을 면치 못할’ 상황이기도 하다. ‘잃어버린 10년’ 따위 과거와의 싸움은 헛될 뿐 아니라 이 대통령에겐 결코 유리할 게 없는 일이 됐다.

이 대통령은 이제 맨몸으로 나서야 한다. 김대중·노무현 시대에 대한 비난과 반대만으로도 통하던 때는 이미 지났다. 대통령 이명박에 대한 국민의 요구와 평가는 그런 차원을 벗어난 지 오래다. 선거 공약이나 정치적·이념적 원칙만 되뇌는 것으로 될 일도 아니다. 그러기엔 하나하나의 상황이 크고 복잡하다. 지금은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실력을 보여야 할 때다.

그런 실력은 있는가. 아직은 미심쩍어할 이들이 많을 성싶다. 김 전 대통령 국장으로 북쪽 고위 조의단의 방문이라는 좋은 기회가 마련됐는데도, 정부는 한참 동안 이리저리 망설이고 허둥댔다. 대책 없는 강경론에 여전히 발목이 잡힌 탓이다. 집값·전세금을 다시 뛰게 만든 부동산정책, 부작용에 대한 면밀한 검토도 없이 불쑥불쑥 내놓는 교육정책을 봐도 믿음보다 걱정이 앞선다. 화해와 타협은커녕 일방적 힘자랑만 있었던 언론관련법 강행 통과나 4대강 정비사업 추진 따위가 실력일 수도 없다.

이도저도 아니라면 진정성은 있어야 한다. 갈등의 시대를 끝내고 사랑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이 대통령의 말이 진심이라면 일곱 달째 장례도 못 치른 용산참사부터 해결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마저 않고 그리 말한다면 너무 뻔뻔하지 않은가.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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