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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퍼주기 예산은 안 된다 / 정남기

등록 2009-08-27 21:14

정남기  논설위원
정남기 논설위원
정부가 내년도 세제개편안을 준비하면서 기업에 대한 임시투자세액공제를 없애겠다고 얘기했을 때 기업들의 반응은 민감했다. 몇몇 대기업은 “차라리 법인세를 인하하지 말고 임시투자세액공제를 유지시켜 달라”는 요구까지 내놨다. 연 수십억에서 수백억원에 이르는 세액공제 혜택이 당장 없어지기 때문이다.

한시적인 임시투자세액공제 제도를 해마다 연장하면서 장기로 운용하는 것은 당연히 사라져야 할 관행이다. 하지만 감세와 친기업 정책을 내걸고 등장한 이명박 정부가 임시투자세액공제까지 손댄 것은 그만큼 사정이 급했기 때문이다. 쓸 데는 많은데 세수는 줄어들고 있으니 뭔가 빈자리를 채워야 했다.

정부가 최근 내놓은 내년도 세제개편안을 보면 그런 흔적이 곳곳에 나타난다. 대용량 가전제품에 대한 5% 개별소비세 신설, 신용카드 소득공제 축소, 전세보증금 소득 과세, 고소득자에 대한 소득공제율 축소 등 세수 증대에 도움이 되는 것이면 가리지 않고 개편안에 넣었다. 그러면서도 법인세·소득세 최고세율 인하는 애초 계획대로 추진할 방침이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도 “세제개편안의 초점을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경기회복, 취약계층 지원, 재정건전성 확보, 성장동력 확충 등을 다 고려하다 보니 뚜렷한 정책 방향이 없는 개편안이 돼버렸다는 뜻이다. 실제로 내년도 세제개편안의 기조는 감세도 증세도 아니다. 법인세만 해도 최고세율을 22%에서 20%로 낮췄지만 과세표준 100억원 이상 대기업의 최저한세율을 11~14%에서 13~15%로 오히려 올렸다. 감세와 증세 방안을 뒤섞어놓고 재정건전성에 도움이 되는 것을 여기저기서 끌어모은 짜깁기식 개편안이다. 한편으론 정부가 재정 균형을 위해 얼마나 고심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정작 중요한 것은 내년도 세출 예산이다. 돈은 벌기는 어렵지만 쓰기는 쉽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불경기에 세수 1000억~2000억원을 늘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정책 효과 등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세출 예산을 짠다면 어렵게 거둬들인 세수를 엉뚱한 곳에 퍼주는 꼴이 돼버린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거창한 공약성 국책사업과 선심성 지역개발 사업이다. 4대강 살리기는 다시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수시로 홍수가 발생하는 지류는 놔두고 멀쩡한 본류를 뒤집어엎겠다고 하니 금쪽같은 국민의 세금이 아까울 뿐이다. 최근 발표된 첨단의료복합단지 조성 계획도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한 곳만 세우기로 한 의료복합단지를 정치적 안배에 따라 일주일 전에 갑자기 두 곳으로 늘렸다. 그러다 보니 5조6000억원의 예산도 갑절로 늘게 됐다. 탈락한 대전·원주 등은 결정에 반발해 자체적으로 의료단지를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이게 무슨 꼴인가.

가장 우려되는 것은 내년 5월에 치러질 지방선거다. 지방선거의 특성상 지역개발 공약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특히 이번 정기국회에서는 선거를 겨냥한 국회의원들의 예산 따내기 전쟁이 벌어질 것이 확실하다. 지방자치단체도 마찬가지다. 재선을 노리는 단체장들의 선심성 사업 발표가 줄을 잇고 있다.

본격적인 경기회복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또한 실질임금 감소와 실업자 증가로 취약계층의 생활여건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같은 돈이라도 어디다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 차이는 크다. 과거 어느 때보다 실속 있고 알찬 예산안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내가 낸 세금이 어디서 누구한테 쓰이는지 눈을 부릅뜨고 살펴봐야 할 때다.


정남기 논설위원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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